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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텍에서 시작된 '잘못된 만남'... 범인은 누구

입력
2018.06.17 13:00
수정
2018.06.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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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새벽 뻥 뚫린 도로는 두 소녀가 처음 만끽한 자유처럼 거칠 게 없었다.

A와 B(당시 14세)는 차창 너머 들이닥치는 새벽 공기에 취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낯선 목소리에 B는 눈을 떴다. 목소리 주인공은 어젯밤 운전대를 잡은 남성 C였다. 차는 한적한 도로변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산책 가자.” C의 손에 이끌려 산책에 나선 B는 얼마 안 가 뒤통수가 화끈해졌다. 고개를 돌리니 C가 둔기를 들고 서 있었다. 쓰러진 B의 눈에는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 한 구가 들어왔다. 아까부터 보이지 않던 친구 A였다. C는 준비한 비닐 호스로 B의 목을 졸랐다. B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디스코텍의 ‘잘못된 만남’

이바라키현 고가(古河)시에서 같은 중학교에 다닌 A와 B는 소꿉친구였다. 둘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학 소녀였지만 모범생은 아니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디스코텍에 가는 일탈도 가끔 즐겼다. 1981년 12월 A의 가족이 고가시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도쿄 시로카네다이(白金台)로 이사 가면서 둘은 떨어져 지내야 했지만 우정의 끈은 굳건했다.

1982년 5월30일. A와 B는 가출을 결심했다. 둘은 도쿄 시내 디스코텍, 카페 등을 전전하며 가출 생활을 이어갔다. 남성 C를 만난 건 6월5일 신주쿠의 한 디스코텍에서였다. 가출한 지 일주일째 되던 무렵이었다.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잡담을 나누던 C와 두 소녀는 디스코텍을 빠져 나와 근처 패스트푸드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금씩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쯤, C가 소녀들에게 말했다. “우리 드라이브 가자.” 갈 곳도, 잘 곳도 없던 두 소녀는 C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C는 특이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검고 둥근 얼굴, 큰 눈에 짙은 눈썹, 머리는 목까지 내려오는 장발이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빨간 스포츠카를 끌고 다녔다. 옛날로 따지면 ‘야타족’ 같은 느낌이었다. 야타족은 ‘야! (차에) 타!’를 줄인 말로, 부모의 차나 부모가 사준 차를 몰고 다니며 길거리에서 여성들을 유혹하는 젊은 남성을 말한다. C는 두 소녀를 차에 태우고 신주쿠에서 약 40㎞ 떨어진 지바(千葉)현으로 향했다. 새벽 4시 30분. 거리는 인적 없이 고요했다. 쏟아지는 졸음이 두 소녀의 눈꺼풀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A는 간신히 졸음을 참고 있었다. B가 본 A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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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

6월 6일 오전 11시50분쯤. 지바현 요코도(横戸)쵸 한 자전거 도로에서 약 200m 가량 떨어진 덤불에 한 소녀가 넋을 잃은 채 앉아 있다는 신고가 지바현 경찰에 접수됐다. 소녀의 옆엔 잔인하게 훼손된 시신 한 구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살아남은 소녀는 B, 죽은 소녀는 A였다.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범인 검거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범인 C가 치밀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그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적지 않게 발견됐다. 먼저 발자국. 수사 결과 C는 범행 당시 250~260㎜ 크기의 외국 농구화를 신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둘째로 비닐 호스. C가 A, B의 목을 조를 때 쓰인 것으로 보였다.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건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B가 살아 있었다. 정신적 충격이 심했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B는 경찰에 C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C는 나이가 25세 전후로, 키 170㎝에 사건 당시 흰색 바탕에 붉은 색 선이 들어간 셔츠와 남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빨간색 스포츠카를 끌고 다니며 두 소녀에게 “누나와 남동생이 있고, 지금은 누나와 둘이 산다”, “동생이 여자에게 인기가 좀 있다”, “차는 부모님이 사줬다”는 등 중요한 단서가 될 자신의 신상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과감한 면모도 있었다. 심지어 B는 당시 C가 다닌다고 말한 대학 이름까지 똑똑히 기억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 정체는 유력 정치인 아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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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의심을 받은 건 폭주족이었다. 사건 장소 근처에 은신처가 있는 폭주족 중 한 명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A, B는 가출 기간 동안 실제로 폭주족들과 자주 어울렸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특별한 혐의를 찾지 못한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대학생 D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D는 B가 진술한 범인의 특징과 공통점이 많았다.

D는 도쿄의 유명 사립대 E대에 재학 중인 20대 남성이었다. 골프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빨간색 스포츠카를 끌고 다녔다. 머리는 장발처럼 길었다. 그러나 여중생 살인사건 전후로 머리를 짧게 잘랐다는 소문이 있었다. D는 집안도 ‘빵빵’했다. 외가가 정치인 집안이었다. 정황만 놓고 보면 D가 범인일 가능성은 90% 이상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뒤 D가 부모 권유로 해외 유학을 떠난 것이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눈앞에서 놓친 경찰은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D 외에도 1997년 공소시효(15년)가 만료될 때까지 여러 사람이 용의 선상에 올랐다. 그러나 D만큼 유력한 용의자는 없었다. D는 유학을 떠난 뒤 소식이 끊긴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인 B 또한 근황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한편, 지바현 여중생 살인사건은 일본 대중문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일단 정부가 디스코텍의 심야영업에 제동을 걸었고, 이후 디스코텍 문화가 크게 위축됐다. 해당 사건을 소재로 한 노래도 등장했다. 가수 포지션의 노래 ‘I love you’ 원작자로 유명한 일본 가수 오자키 유타카(1965~1992)의 2집에 수록된 노래 ‘댄스홀(ダンスホール)’은 이 사건을 소재로 작사, 작곡한 곡이다. 1983년엔 이 사건을 토대로 ‘빨간 구두(赤い靴)’라는 작가주의 성향 성인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송영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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