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고 싶은 여초딩(여자 초등학생)만 들어와.”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각종 생활정보를 공유하고 취미 관련 채팅을 즐겨 오던 직장인 김모(30)씨는 최근 초등학생 조카 선물을 구입하려고 키워드 검색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초딩’ 검색을 했더니 정작 초등학생과는 무관한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담긴 해시태그(#)의 채팅방이 툭툭 튀어나왔기 때문. 김씨는 “나이 제한 없이 모두가 이용 가능한 카카오톡에서 이렇게 외설적인 채팅방 검색이 가능한지 몰랐다”며 “정말 초등학생인 조카가 볼까 두렵다”고 말했다.
‘여고생 환영’이라고 내건 오픈채팅방에서는 본인을 서울 노원구에 사는 28세 남성이라고 밝힌 상대방이 나이와 사는 곳, 얼마가 필요한지를 물었다. 17세 고등학생이며 10만~15만원이 필요하다고 하자 ‘얼마든지 줄 수 있다. 대신 몸매 사진을 보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에 그치지 않고 10만원이면 만지는 것까지만, 성관계가 가능하면 ‘20만원’까지 줄 수 있다고 ‘딜(거래조건)’을 제시했다.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운영하는 오픈 채팅이 다양한 대화와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익명의 장을 마련해 주겠다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각종 범죄의 방목지가 되고 있다. 오픈 채팅은 특정 SNS 이용자라면 누구나 주제별로 개설ㆍ참여가 가능하도록 한 채팅 기능인데, 대화방 개설과 참여 모두 ‘익명’으로 이뤄지고 주제 역시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성매매나 특정인의 민감한 개인정보 유출 등 범죄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비공개 촬영회’에서 겪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유튜버 양예원씨도 오픈 채팅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유출된 양씨 사진이 불특정 다수에게 빠르게 퍼진 게 바로 오픈 채팅을 통해서다. 양씨뿐 아니라, 출처 불명의 각종 노출 사진들이 수시로 오가고 있는가 하면 가상화폐(암호화폐) 정보를 교환하는 일명 ‘코인방’에서는 가짜뉴스가 공유되거나 불법 도박을 권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금칙어 설정ㆍ신고 기능 있어도 사생활 침해 탓 제대로 못 걸러청소년이 범죄에 노출되기도 십상이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여고생’을 검색하면 성매매를 암시하는 오픈채팅방이 무수히 등장한다. 물론 각종 ‘랜덤 채팅’에서 이뤄지는 성매매는 이전에도 논란이 돼 왔지만, 문제는 카카오톡이 6월 기준 이용자가 ‘4,2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사실상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SNS라는 점이다.
카카오 측도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다. 닉네임이나 채팅방 이름에 조건만남ㆍ가출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금칙어 설정’과 ‘신고’ 기능을 통해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카카오톡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사적 대화 영역이다 보니 사생활 침해가 우려돼 채팅 내용을 전부 들여다보고 걸러낼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수사에도 한계가 있다. 경찰 관계자는 “대화 내용을 캡처하지 않은 채 채팅방을 나온다면 범행을 입증할 단서가 사라지게 돼 사후에는 추적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오픈 채팅의 순기능을 무시할 순 없다. ‘익명성’이 보장돼 각종 고발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상무의 ‘물컵 갑질’ 논란 이후 대한항공 사주 일가의 각종 갑질 사례가 터져나올 수 있었던 데 ‘오픈채팅방’의 역할이 컸다. 곽진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문제 발생 시 신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채팅방 개설에 본인 확인 절차 등을 포함하고, 범죄신고포상제도 등 자율적인 규제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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