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예멘 난민 500명 수용 거부
국민청원 나흘 만에 18만명 동의
난민 검색하면 여성차별ㆍ범죄 등
구글 트렌드서도 부정적 시각
“난민 한명에 매달 138만원 지원”
가짜뉴스까지 퍼지며 부추겨
회사원 이모(27)씨는 요즘 부쩍 직장 동료와 ‘난민’ 얘기를 나눈다. ‘이슬람 문화권 남성 수백 명이 한꺼번에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다. “여성 대상 범죄가 더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주위에서도 비슷하게 걱정하더라”라고 했다. 급기야 이씨는 “난민 수용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지인에게 적극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인식이 유별난 건 아니다. 특정 단어에 대한 대중 관심도를 보여주는 ‘구글트렌드’에서 최근 일주일 새 사람들은 ‘난민’을 검색하면서 대부분 ‘난민 범죄’ ‘타하루시(이슬람의 집단 괴롭힘 악습)’ ‘성폭력’ 등을 찾아봤다. ‘난민→이슬람→여성 차별→관련 범죄 증가’라는 일방 도식이 은연 중 의식에 자리잡은 결과다. 여기엔 “유럽에서도 난민 문제가 심각하더라”는 부연도 빠지지 않는다.
20일은 유엔이 난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제정한 열여덟 번째 ‘세계 난민의 날’이지만 우리 사회는 ‘난민 혐오’로 물들고 있다. 유엔난민기구에 큰 영향을 미친 ‘운크라(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가 원래 한국전쟁의 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라는 사실은 잊혀진 지 오래,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꾸린 우리 선조들 역시 ‘정치 난민’이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있다.
오히려 ‘제주 예멘 난민 500명 사태’를 기회 삼아 난민 혐오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제주도 난민 수용 거부’가 올라와 나흘 만에 18만여명이 동의했다. ‘이슬람 사람들은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성범죄는 불 보듯 뻔하다’는 혐오 발언이 포함된 해당 청원은 16일 관리자에 의해 삭제됐다. 청와대가 “난민 관련 청원은 여러 건이지만, 그 중 표현 자체가 운영 기준에 맞지 않아 삭제된 것이 있다”고 밝혔을 정도. 19일 기준 25만명 이상 동의를 얻어낸 또 다른 관련 청원은 청와대 답변을 받게 됐다.
제주 지역 맘(Mom) 카페에는 ‘난민 반대 청원 참가해주세요’ ‘난민들의 범죄 영상’ 등 난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글이 10분에 하나 꼴로 올라오고 있다. 직장인 이유라(26)씨는 “가족이 제주에 있어 걱정이 큰데, 난민들이 국민 혈세로 과도한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반감이 든다”고 말했다.
근거 없는 혐오와 감정에 기댄 선입견은 무방비로 퍼지는 가짜 정보가 더욱 부추긴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리 정부가 난민 한 명당 매달 138만원을 지원한다’는 글이 올라왔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기준 난민 생계비 지원액은 1인당 월 43만2,900원이며, 취업을 하기 전 6개월까지만 지급된다.
한국에 어렵게 둥지를 마련한 난민들은 두렵다. 시리아 난민을 돕는 국내 구호단체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압둘 와합(34)씨는 “9년 전 한국에 왔을 때보다 최근 며칠간 난민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안 좋아진 것을 체감한다”며 “주변 시리아 난민들도 상처를 많이 받고 사람 만나기를 꺼리는 상태”라고 전했다.
난민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씨는 “그간 한국 사회는 난민에 대해 ‘온정주의’ 시각으로 접근했을 뿐 사회적 토론을 한 적이 없다”라며 “불쌍하니 도와줘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난민에 대해 체계적인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제대로 알고 의견을 모아야 혐오도 힘을 잃을 것이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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