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리 극대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세기의 담판’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 논의를 ‘되돌릴 수 없는’ 국제 사회의 핵심의제로 못박은 데 이어 연이은 방중으로 대미 비핵화 협상력 제고와 실질적인 대북제재 완화 효과를 노리고 있다. 격의 없는 남북 정상회담을 국제무대 진출과 난관에 봉착한 북미 정상회담 개최의 돌파구로 삼은 것까지 감안하면 전략적인 ‘트라이앵글 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19일 오전 옛 소련의 일류신(IL)-62M을 개조한 전용기 ‘참매1호’를 이용해 1박2일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을 전격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석달 새 세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 위원장의 3차 방중은 명목상 시 주석에게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북중 경제협력 활성화 방안 등을 모색하는 차원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직접 중국을 방문한 점, 시 주석의 답방이 예상됐다는 점, 북미 정상회담 후속 협의를 위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을 앞둔 때라는 점, 무역ㆍ남중국해ㆍ대만 문제 등으로 미중 갈등이 확산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읽힌다.
우선 김 위원장은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북중 밀착관계를 과시함으로써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쌍중단(雙中斷ㆍ북한의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ㆍ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체제 전환 논의 동시진행) 주장을 등에 업고 단계적ㆍ동시적 비핵화 양보를 받아내려는 것이다. 미중관계 악화 속에 보란 듯 중국을 방문한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을 만나 “북미가 정상회담 합의를 이행하면 비핵화는 새로운 중대국면을 열어갈 것”이라며 “중국 및 유관국들과 함께 영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건 미국이 압박으로 일관할 경우 중국을 적극 끌어들이겠다는 경고의 의미다. 이는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을 우려하는 중국의 입지를 넓혀줌으로써 지속적으로 ‘북한 후견인’ 역할을 하도록 강제하는 측면도 있다. 실제 시 주석은 “정세가 바뀌어도 북중관계와 북한에 대한 지지는 변함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3차 방중에는 중국과 시 주석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통해 경제 우선주의를 실천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의지도 담겨 있다. 미국은 6ㆍ12 북미 정상회담이 어렵사리 성사된 이후에도 북한이 체제안전과 더불어 가장 원하는 대북제재의 완화ㆍ해제에 여전히 미온적이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완화를 공론화한 중국을 통해 실질적인 제재 완화 효과를 얻을 필요가 크다. 러시아가 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미국을 향해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북ㆍ중ㆍ러 3국 간 경협 확대 가능성을 과시하는 성격도 있어 보인다.
김 위원장 개인적으로는 ‘은둔의 독재자’ 이미지를 벗고 정상국가의 실용적인 지도자임을 부각시키는 의미도 있다. 김 위원장이 북한으로 돌아가기 전에 중국 정부와 관영매체가 방중 사실을 공식 확인한 건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 때와 비교해도 처음이고, 수시로 전용기를 이용하고 심지어 중국에서 임차한 사실까지 공개함으로써 안전ㆍ경호문제에 집착해 특별열차를 고집하던 부친과 다른 지도자임을 보여줬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남북관계 개선과 북중관계 회복, 북미관계 전환 등을 동시에 진행하는 삼각외교의 한 단면이면서 미중 간 갈등ㆍ대립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실리외교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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