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차례, 싱가포르 1차례 등 중국, 미국 정상과의 회담을 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차례 해외 방문은 이중 포석이다. 대미 비핵화 협상력 강화라는 정치적 목적과 더불어 개방경제 모델 학습이라는 목표가 김 위원장 동선을 통해 드러난다. 그가 시찰한 과학과 관광, 농업, 사회 인프라 시설에는 그의 관심사와 북한의 발전전략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3차 북중 정상회담을 위해 19일 중국을 찾은 김 위원장은 20일 오전 수행원들과 베이징 농업과학원을 방문했다고 일본 TBS방송 등이 보도했다. 이어 오후엔 서울과 평양, 베이징을 잇는 중국횡단철도(TCR) 사업을 염두에 둔 듯 베이징시 기초시설투자 유한공사를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집권 후 7년만의 첫 해외 방문이었던 지난 3월 1차 방중에서 김 위원장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을 찾아 ‘중국 과학 혁신 성과전’을 둘러봤다. 5월 초순에 이뤄진 중국 라오닝성 다롄으로의 2차 방중 일정에서는 수행원들을 오락시설이 밀집한 동항 상무구와 레이저 프로젝터 TV, 영사기 등을 만드는 국유기업 화루그룹에 보내 중국 문화사업을 참관케 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날인 11일 밤 김 위원장은 관광 랜드마크인 마리나 베이 샌즈(호텔)에서 시내를 둘러보며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귀국(싱가포르)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들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했다. 숙원 사업인 원산갈마지구에 적용할 국제 관광 및 MICE(회의ㆍ포상관광ㆍ컨벤션ㆍ전시) 산업모델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로써 중국ㆍ싱가포르 등 해외 순방에서 김 위원장의 모든 일정에는 ‘경제’라는 주제가 포함된 모양새가 됐다.
여러 정황상 김 위원장이 핵무기와 바꾸기로 마음 먹은 건 경제 도약이다. 중국 싱가포르 방문 과정에서도 북미 협상 후 경제 발전 전략을 구상하는 차원에서 각종 과학, 농업, 경제 시설을 방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 소식통은 20일 “핵 개발 과정에서 습득한 과학 기술에 중국 등 다른 나라의 경험을 입혀 정보기술(IT) 등 4차 산업으로 단번에 도약하려는 게 북한의 목표”라고 했다. “기존 산업 구조를 한번에 뛰어넘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 인프라가 미비한 북한 입장에서 기존 산업 발전 모델을 답습해선 발전 속도가 한국을 능가할 수 없다는 계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최근 경제 개방을 시사하며 ‘경제 개발 속도전’에 나선 것도 지금이 경제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위기감에서라는 분석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일관되게 ‘단번 도약’ 정책을 추진해 왔고 그것과 관련해 중국의 도움, 즉 과학 기술을 토대로 한 발전 경험을 적극 받아들이겠다는 메시지를 중국에 보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전력망 등 인프라 재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건 이런 단번 도약을 위해서다. 특히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에 포함돼 있는 동북아 슈퍼그리드(광역 전력망)를 통한 안정적 전력 공급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은 몽골의 사막에서 대량의 풍력 발전 단지를 조성, 북한까지 연결한다는 구상으로 매년 심각한 전력난에 단전을 반복하고 있는 북한에게는 단비 같은 사업이다.
이런 김 위원장의 경제 구상을 지원할 마중물은 원산갈마지구의 ‘국제 관광 산업’이다. 다른 소식통은 “국제 관광 산업은 엄청난 외화벌이 수단”이라며 “최근 중국 관광단이 북한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김 위원장이 큰 성의를 보인 것도 향후 중국 관광객 유치 때문”이라고 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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