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41) KBS 해설위원은 “중계를 할 때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지금 해설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는 “‘4년 전 (브라질월드컵 알제리전 2-4 참패)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데’ ‘그런 일이 또 발생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 실패를 맛보고도 4년 후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현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있었다.
또한 이 위원은 “약 팀이 강 팀을 이기기 위해서는 많이 뛸 수 있는 강한 체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임시방편(체력과 투지)에만 기대야 하는 것인가. 한국 축구가 기술적으로 전술적으로 완성도 있는 축구를 할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이기라고 강요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해설하면서 많은 괴리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단순히 한국대표팀의 스웨덴전 1경기 부진을 꼬집는 건 아닌 듯했다. 그에게서 한국 축구의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는 진심이 묻어났다. 한국과 멕시코의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2차전(한국시간 6월 24일 0시)이 벌어지기 전날인 현지시간 22일 저녁 로스토프 아레나 미디어센터에서 이 위원을 만났다.
다음은 이 위원과 일문일답.
-스웨덴전 때 너무 수비에 치중해 공격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비가 중요한 이유는 공격을 위해서다. 수비만을 위해 수비하는 게 아니다. 그날은 수비는 됐다. 볼을 빼앗은 뒤 3초 만에 다시 빼앗기는 게 문제였다. 공을 빼앗으면 가까이 있는 주변 선수는 공을 받기 위해 벌려줘야 하고 20미터 밖 멀리 있는 선수들은 공간을 찾아 나가야 역습이 된다. 그게 안 되고 수비를 하는 것으로만 멈춰 있었다.”
-왜 안 된 건가.
“선수들 체력에 문제가 있었다. (공격하려는) 마인드는 있었지만 체력적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수비하는데 힘을 다 빼서 공격을 못했다. 또 하나는 수비를 하는 목적이 뭔지 선수들이 불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공을 빼앗으면 공격을 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선수들에게 충분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많은 팬들이 김신욱의 선발을 비판한다.
“스웨덴의 높이 때문에 김신욱을 선택한 건 이해가 간다. 스웨덴 높이가 있으니 세트피스의 공격이나 수비 상황에서 김신욱이 싸워줄 수 있으니까. 전반에 김신욱을 택했다가 후반에 빠른 선수를 투입하는 전략에서 김신욱의 선발 투입은 이해가 간다.”
-장현수 수비는 어떻게 보나. 비판 여론이 많다.
“일반적으로 장현수가 좋았냐고 했을 때 그렇게는(좋다고는) 말 못 한다. 팬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근데 그럼 장현수 말고 또 다른 대안이 누가 있는가라고 했을 때 딱 떠오르는 선수가 없다. 이게 문제인 거다. 감독이 선택을 할 때는 최선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차선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장현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혹은 ‘좋은 활약 펼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팬들의 의견은 일리는 있지만 그럼 장현수보다 누가 나은가라고 했을 때 마땅히 떠오르는 선수가 없다. 그게 문제다.”
-멕시코의 어디를 조심해야 하나.
“독일전만 놓고 이야기하면 멕시코의 강점은 엄청난 역습과 전방 압박이다. 그 압박을 우리 선수들이 견뎌낼 수 있을까. 그런데 멕시코의 전방 압박과 역습이 무서운데 더 무서운 건 우리보다 더 뛰는 팀이라는 거다. 제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멕시코가 우리보다 더 뛰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다. 더 뛰기까지 하면 우리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첫 경기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우리 선수들이 스웨덴전에서 열심히 안 뛴 건 아니라고 보는데.
“동의한다. 열심히 뛰었다고 생각한다. 아까 말했듯 마음은 있으나 뛸 수 있는 체력이 없는 거다. (공격으로) 나가려는 마인드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가야 하는데 나가지 못하는 거다. 체력적으로 충분히 준비가 돼 있지 않으니까. 정신과 육체는 상호 연관성이 있다. 물론 멘털이 체력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체력이 멘털을 좌우한다. 그러니까 체력이 떨어지면 멘털이 떨어진다. 물론 멘털이 체력을 어느 정도 끌어올릴 수 있지만 그건 일시적인 현상이지 90분 내내 할 수 없다. 멘털도 체력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체력이 엄청 중요하다. 체력이 안 좋은데 멘털만 강조할 수는 없다.”
“우리가 브라질월드컵 때 실패한 이유를 말하기 전에 처음부터 보자. 월드컵에서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는 팀을 이길 수 있는 게 무엇인가. 더 뛰는 것 밖에 없다. 이번 대회의 이란이나 아이슬란드 모두 마찬가지다. 줄기차게 뛰어다닌다. 그게 상대를 아무 것도 못 하게 만든다. 한국 축구가 2002년에 4강, 2010년에 16강 간 것도 그 덕분이다. 상대보다 엄청나게 많이 뛰고 수비할 때도 많이 뛰고 공격할 때도 많이 뛰니까 상대가 어떻게 할 줄을 모르는 거다. 난 2014년에 우리가 (체력적으로) 못 뛰었다고 판단한다. 그런 과거의 기억이 있음에도 이번에도 역시 체력적으로 우리보다 강한 상대를 맞서 약 팀의 입장으로 충분하게 준비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체력도 기술이라고 하는 거다. 기술이라는 범위를 광범위하게 보면 상대보다 더 많이 뛸 수 있는 체력도 포함된다. 아쉬운 건 이미 우리는 2010년에 체력적으로 준비를 잘 됐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경험했고 또 반대로 2014년에 체력적으로 준비가 잘 안 됐을 때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경험했다. 그런데 두 대회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우리는 도대체 과거에서 무엇을 배운 건가.”
-스웨덴전 역시 그게 문제였던 건가.
“스웨덴을 압도할 정도의 체력이 아니었던 거다. 스웨덴을 압도할 정도로 뛰어야 스웨덴을 이길 수 있다. 스웨덴이 우리보다 강하고 멕시코도 우리보다 강하다면 우리는 더 많이 뛰는 것밖에 없다. 상대가 우리보다 강한데 우리는 뛰는 양이 비슷하다면? 그러면 우리는 전술적으로, 기술적으로 또 높이에서 상대보다 나은 게 뭐가 있나.”
-그걸 키우기 위해 대한축구협회가 스페인 출신 피지컬 코치도 영입하고 한 것 아닌가.
“그래서 더 안타깝다. 대표팀이 내부적으로 뭘 어떻게 체력적으로 준비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문제는 체력적으로 준비가 안 됐다는 건 경기를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상대가 우리보다 실력이 뛰어난데 체력마저도 비슷하니 상대 기술이 더 두드러지는 거다. 우리가 상대보다 체력이 앞서면 상대가 기술이 낫더라도 체력으로 기술을 안 보이게 누를 수 있다. 그게 안 되니까 상대가 우리보다 강한 게 경기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거다.”
-그럼 지난 달 소집 직후부터 체력 강화 프로그램을 했어야 할까.
“그 때부터 단계적으로 했어야 한다고 본다. 2010년에 우리는 2~3일 쉬고 그 다음부터 바로 단계적인 체력 훈련에 들어갔다. 그래서 계속 몸이 피곤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월드컵 4~5일 정도 앞두고 훈련 강도를 떨어뜨렸다. 월드컵 때는 몸은 피곤했지만 체력은 굉장히 좋았다.”
-내일 멕시코전에서 체력이 나아질 수 있을까.
“조금은 나아질 거다. 하지만 확 올라올 수는 없다. 월드컵은 시작한 다음에 뭔가 하면 늦는다. 월드컵은 이미 그 전에 시작된 것이고 그 전에 준비한 게 월드컵에서 나타나는 거다. 월드컵 대회 중에 뭐나 크게 바뀐다?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걱정되는 건 2014년 브라질월드컵 끝났을 때 모든 사람들이 ‘바뀌어야 한다’ ‘변해야 한다’ 했고 축구계도 ‘변하겠다’ ‘바꾸겠다’고 했다. 4년 지났다. 뭐가 변했고 뭐가 바뀌었나. 더 두려운 건 4년 후에도 이 말을 또 반복할 거라는 점이다. 이번 대회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는 약 팀들을 보자. 공통점이 있다. 얼마나 많이 뛰는 지 눈에 보인다. 얼마나 압박을 하고 얼마나 뛰고 얼마나 수비적으로 견고한가. 거기에 강 팀들이 쩔쩔 매는 거다. 이미 답은 나와 있는데 중요한 건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아는데 안 한다는 거다. 앎과 모름을 이야기할 때 몰라서 못 하는 경우가 있고 아는데 안 하는 경우가 있다. 앎과 모름의 차이는 지식의 차이가 아니라 행동의 차이다. 행동하지 않는 앎은 모름이다. 결국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서 좋은 축구를 하기 위한 답을 알고 있는가? 모르는 거다. 왜냐면 행동하지 않으니까. 체력이 중요한 거 알고 많이 뛰어야 하는 거 아는데 다 알고 있는데 계속 4년마다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럼 이건 아는 게 아니고 모르고 있는 거다. 이런 안타까움이 있다.“
“사실 체력 강화도 근본적인 방책은 아니다. 월드컵 같은 대회에서 단기간에 약한 팀이 나갔을 때 그나마 할 수 있는 임시적인 방편인 거다. 한국 축구가 기술적으로 튼튼하고 전술적으로 강하기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하는데 결국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다. 바로 유소년부터 정책적으로 해야 한다. 제가 해설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편으로 미안한 느낌이 있다. 능력이 안 되는 아이들에게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이기라고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해설하면서 많은 괴리감을 느낀다.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요구하면 괜찮은데 할 수 없는 걸 하라고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결국 월드컵을 대비한 체력 강화도 시험을 앞둔 벼락치기 공부라는 것 아닌가.
“맞다. 그나마 벼락치기로 할 수 있는 게 체력이다. 하지만 체력은 짧은 시간에 올라가지만 또한 치명적인 약점이 짧은 시간에 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올릴 수 있기 때문에 2010년에 우리가 버텨냈지만 이게 과연 한국 축구 수준이었느냐. 그건 아니라는 거다.”
-근본적으로 지도자 또는 그 위의 협회 문제 아닌가.
“맞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 모두 아는 이야기 아닌가. 맨날 반복되는 이야기다. 좋은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좋은 프로그램으로 축구를 배우면 잘 한다. 그럼 좋은 선수를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은 뭐냐. 좋은 지도자다. 그럼 좋은 지도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좋은 제도와 프로그램, 행정력에서 만들어진다. 이거 다 나온 이야기다.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찾을 때 원인에서 문제점을 찾지 않고 계속 현상에서 찾으려고 한다. 어떤 때 현상이 잠깐 좋으면 좋았다고 착각한다. 현상보다는 원인에 계속 초점을 둬야 한다. 월드컵이 4년마다 계속 될 텐데 우리는 그 때마다 우리가 경기를 잘 할지 못 할지 모르는 거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 팬들에게 기쁨, 즐거움을 줘야 하는데 도리어 지금은 팬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팬들이 월드컵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현상은 진짜 저를 포함한 축구인 모두의 책임이다.”
-내일 멕시코와 2차전은 어떻게 전망하나.
“숨어 있는 한국대표팀 만의 ‘멘털리티’가 있다. 어떤 순간에 ‘저런 에너지가 어디 숨어있었지’ 하는 에너지가 있다. 그런 기대는 있다. 위기의 순간에 나오는, 한국인만 갖고 있는 에너지가 있다. 그걸 조금 기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동시에 우리는 언제까지 한국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그 엄청난 에너지에만 기댈 것인가, 언제까지 투혼이라는 것에 기대는 축구를 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좀 잘 하는 축구를 하면 안 되나, 맨날 우리는 투혼에 의지하는 축구만 해야 하나라는 씁쓸함이 있다.”
“이건 저를 포함한 축구인의 문제고 책임이다. 팬들은 즐길 권리가 있고 우리(축구인)는 좋은 경기를 할 책임이 있다. 이건 선수들의 문제가 아니다. 선수들은 그냥 현상인 거고. 사실은 원인은 시스템이나 환경 지도자의 프로그램 등 여러 가지가 복합돼서 나오는 거다. 월드컵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 끝나고 나면 누구 잘못이네 그런 이야기 안 했으면 좋겠다. 선수 잘못? 아니다. 그럼 감독만의 잘못?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그럼 협회만의 잘못인가? 아니다.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한국축구가 뭐가 문제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본질적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협회 안에 계신 분들도 나름 열심히 한다. 또 밖에 있는 사람 중 무조건 협회를 공격하는 사람도 있다. 그냥 어떤 목적 없이 말이다. 누구 잘잘못을 가리는 게 아니라 진짜 한국축구 잘 하려면 뭘 해야 하는지 이야기 나누는 그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예측해 볼까. 우리가 만약 이번 월드컵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 난리가 날 거다. 팬들은 비난할 거고 언론에서는 ‘이대로 안 된다’ ‘바꿔야 된다’ 할 거다. 1주일만 지나도 어떨 것 같나. 그리고 우리는 4년 후 카타르월드컵에 관심을 가질 거고 거기서 또 같은 문제점을 반복하겠지. 지금 내가 한 이야기를 녹음했다가 그대로 4년 후 틀어도 다르지 않을 거다. 예상이 가능하다. 왜냐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4년 전에 그대로 한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내일 문재인 대통령이 멕시코전을 직접 관전한다.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
“긍정적인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 사실 축구협회에 (홍)명보 형(전무이사) 들어가고 (박)지성(유스전략본부장)이 들어가고 그런 거 긍정적으로 본다. 협회가 발전하고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니까. 그러나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한국 축구는 혁명적인 변화, 전면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약간 변하고 조금 바뀌고 그래서 발전할 거라 보지 않는다.”
-혁명적인 변화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제가 말하는 건 누구 잘못이고 그게 아니라 축구인 모두의 잘못이고 책임인데 근본적으로 다시 셋팅을 해야 한다는 거다. 하려고 하는데 어려워 이렇게 말하지 말고 어려워도 하는 것, 그런 결단이 없으면 안 된다.”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한국 축구가 바뀌는 데 얼마나 걸릴까.
“10년 안에도 가능하다고 본다. 혁명적인 변화가 있고 나서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혁명을 해서 유스부터 적용하면 그 선수들이 자라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거기에 15년은 걸린다. 다시 말하면 지금 해도 15년이 걸린다. 그런데 지금 안 하면 언제 하느냐. 100년 200년이 걸릴 수도 있다.”
-내일 경기(멕시코전)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는 듯 하다.
“그렇게 보이나?(쓴웃음) 지금까지 해설을 하면서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다. 해설하면 내 해설이나 걱정했다. 왜냐면 내 해설에 늘 문제가 있었으니까. 경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이 느껴지는 건 처음이다. (4년 전 알제리 참사 같은 일이 반복될 거라 보나)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데’ 하는 두려움이 있다.”
로스토프나도누(러시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