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ㆍ김정은, 과거와 다른 신뢰쌓기
생존 문제인 만큼 우린 보다 신중해야
김정은의 결단과 진정성을 기대한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ㆍ미 정상이 70년 만에 처음 서로 만났다. 그것만으로도 ‘역사적 순간’이다. 그러나 아직도 앞 길이 험하고 멀다. 한반도, 동북아 아니, 지구적 차원의 안보전략 환경 지각변동과 그 여진도 만만찮다.
지중해, 대서양을 거쳐 태평양을 넘어 해양세력이 유라시아 대륙세력과 맞닿는 한반도. 4ㆍ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평화의 새 길’이 열리고 있다. 22일 문재인ㆍ푸틴 정상회담, 그에 앞서 19일 김정일ㆍ시진핑 3차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이 길을 넓히고 바꾸는 남ㆍ북ㆍ미, 중, 러시아, 일본 등 관련국 정상들의 만남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다. 한반도를 가로지른 해묵은 ‘빙벽’을 녹이는 훈풍들이다.
지난 7일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28개국 장관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대한민국이 정회원국이 된 것도 그 새 바람의 하나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와 한반도종단철도(TKR)연결의 첫 발을 내디뎠다. 김대중 정부 ‘철의 실크로드’ 구상이 문재인 정부에서 첫 열매를 맺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북ㆍ미 관계를 새로 짜는 트럼프와 김정은은 극과 극의 ‘짝꿍’같다. “누구나 전쟁은 할 수 있지만, 오직 가장 용기 있는 사람만이 평화를 만든다”는 트럼프.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고 뒤바꾸는 그는 세계 최대 군사경제 ‘정상국가’ 대통령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북 선제타격을 감행할 것 같았던 그는 김정은과 직통전화 번호를 서로 주고받았다.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에 눈과 귀가 가리었지만 모든 것을 이겨내고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는 김정은. 그는 유일수령체제를 3대 째 이어받은 ‘불량정권’의 국무위원장이다.
이처럼 뼈 속까지 다른 이 두 나라의 지도자가 펼치는 과거와는 색다른 신뢰 쌓기를 전 세계가 지금 지켜보고 있다. 한쪽에선 “CVID를 명시하지 않은 북ㆍ미 정상회담은 두리뭉실하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다른 쪽에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위대한 첫걸음이고, 조만간 실천적 조치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호평을 하고 있다.
이처럼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지만, 좀 시간이 지나야 그 진정성이 드러날 것 같다. 다만 지금 전개되는 협상들이 우리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히 유의해야 할 일이 아직도 너무 많다. 그 세가지만 밝히면,
첫째, ‘4ㆍ27 판문점 선언의 ‘정전상태 종식,’ ‘불가침 합의’ ‘종전선언’ 등 묵직한 개념들에 너무 쉽게, 가볍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최우선 과제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의 실천적 조치들이 이루어지기 전에 한ㆍ미간 군사훈련, 주한미군, 한ㆍ미 동맹 문제 등을 섣불리 꺼내면 ‘혹 떼려다 핵 굳히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 모두 북한이 탄도미사일 엔진시험실을 정말로 없애는지, 탄도미사일 발사대를 폭파하는지, 핵 탄두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등을 냉정하게 지켜보자.
둘째, 남북관계 개선이 비핵화보다 너무 앞서 가는 것도 결코 슬기롭지 않다. 핵을 포함, 대량살상무기를 가진 북한과 평화, 교류, 협력을 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 한국 등 핵 시설 사찰단 정규ㆍ특별 사찰을 완전 허용, 검증할 때까지는 지금 집행 중인 대북제재가 풀려서도 안되고, 쉽게 풀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정상국가로 가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각오가 이번만큼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숨 막히도록 ‘철의 장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북한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은 여전히 매섭다. 북한을 향한 깊은 우려와 불신을 가라앉히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북한을 번영의 길로 이끄는 열쇠는 김정은 위원장 손에 쥐어져 있다. 지금 이 순간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새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북의 대량살상무기다. 게임을 하듯이, 작은 이익을 취하려고 약속과 공언을 뒤집으면 번영과 평화로 가는 길은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의 결단과 진정성을 진심으로 기대한다.
양성철 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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