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5대 총선에 서울 종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또 한 번 낙선했다. 14대 총선에 부산 동구에서 떨어지고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이후 3번째였다.
연거푸 패배한 그는 서울 역삼동에 고깃집을 차렸다. 상호는 여름화로와 겨울부채를 뜻하는 한자를 붙여 만든 하로동선(夏爐冬扇). 여름에 화로, 겨울에 부채는 계절과 맞지 않아 당장은 쓸모 없지만 적절한 때가 되면 필요한 물건이다. 지금은 선택 받지 못했지만 언젠가 쓰일 수 있을 것이라는 낙선인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이름이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재기를 꿈꾸며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했다고 한다. 간판만 단 것이 아니라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고기와 불판을 날랐다. 그는 이후 2년 뒤인 199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에 물러나면서 그 해 7월 치러진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
이어 2000년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또 다시 낙선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종로를 뒤로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우며 고향인 부산 출마를 고집한 결과였다. 낙선 후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그는 2002년 겨울,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길을 걸어 제2의 ‘바보’ 노무현으로 불린다. 공교롭게도 그는 노 전 대통령과 고깃집 하로동선을 함께 꾸린 막내 동업자다.
김 장관은 19대 총선을 앞둔 2011년 12월, 4선이 보장된 경기 군포를 두고 보수의 텃밭인 대구로 뛰어들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낙선이었다. 이어진 2014년 대구시장 선거는 40.3%라는 의미 있는 득표율만 남긴 채 고배를 마셨다.
그는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4년 넘게 2번의 쓴 잔을 마시며 노력한 결과 20대 총선에서 당시 여권 대권 주자였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꺾고 민심을 얻었다. 김 장관은 이제 민주당내 유력 대권 주자로 꼽히고 있다.
이번 6ㆍ13 지방선거에는 노무현, 김부겸에 이어 제3의 ‘바보’ 노무현이 탄생했다. 9번 출사표를 던져 8번 지고 첫 승리를 거머쥔 민주당 울산시장 송철호 당선인이다. 그는 40대 초반이었던 1992년 14대 총선 때 울산 중구에 출마해 지금까지 국회의원 6번, 울산시장에 2번 떨어졌다. 부산 중구 보수동에서 태어났으나 초ㆍ중학교를 전북 익산 할머니댁에서 보낸 것이 지난 8번의 선거 때마다 발목을 잡은 ‘지역주의 족쇄’가 됐다.
송 당선인은 노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인권ㆍ노동운동을 같이 한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몇 번이나 선거를 그만 두려 했지만 선배인 노 전 대통령과 후배인 문 대통령의 만류에 마음을 다잡았다. 2014년 울산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문재인 당시 의원은 그를 가리켜 "(부산에서 세 번 낙선한) 바보 노무현보다 더한 바보 송철호”라고 하기도 했다. 송 당선인은 민주당, 민주노동당, 무소속 등 당적은 여러 번 바꿨지만 울산이라는 출전 장소는 바꾸지 않았고, 9수 끝에 당선된 기쁨과 더불어 첫 민주당 계열 울산시장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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