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비핵화 조치 전까진 몰라
풍계리 폭파 등 검증 불가능
모두 즉시 되돌릴 수 있어
미사일엔진시험장 폐쇄하면
김정은 진지한 자세 증명될 것”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만 듣기보단 이제 비핵화의 증거를 보고 싶다.”
6ㆍ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추진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놓고 관측이 갈리는 가운데, 존 에버라드(62)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가 한국일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극도로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기인 2006~2008년 평양에 부임해 첫 핵실험,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을 겪고,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이어진 북한의 ‘뒤집기 외교’까지 모두 목격한 인물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글로벌인텔리전스서밋’ 참석 차 방한한 그는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북측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는 (김정은의) 속내를 절대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6ㆍ12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묻자 “김 위원장이 실제 마음 먹은 바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은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시킨 후 실제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채 이득을 얻는 데 능하다”며 “북미 공동성명에 검증 원칙이 포함되지 않은 점은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언젠가 한미는 반드시 북측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검증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핵ㆍ미사일 실험 중단과 같은 북측의 결단이 중요한 신호로 보여도 전문가 검증이 불가능한 점과 관련해 “지금까지 북한의 조치 모두 즉시 되돌릴 수 있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김 위원장이 핵ㆍ경제 병진 노선을 폐기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북한의 공식적인 노선은 여전히 병진”이라며 “지난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 총력 집중’을 선언했다고 해서 핵무기를 영영 버릴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선 추가 핵무기 개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잠정 중단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만 김 위원장이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화답해 미사일엔진시험장을 폐기할 경우 진정성 차원에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는 분석을 덧붙였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훈련 중단이라는 거대한 양보를 했다”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억지를 뜻하는 미사일엔진시험장 폐쇄 시 “김 위원장이 진지한 자세로 임한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부여했다.
에버라드 전 대사는 북측의 의도를 속단해선 안되는 근거로 김 위원장의 개인 성향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 은둔형 지도자라는 평과 달리 그를 만나본 지인들은 하나 같이 상당히 매력적이고 유머 감각이 많으며 사교적인 인물이라고 입을 모았다”면서 “김 위원장이 관중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은 TV 보도 등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주목했다. 현재 국면을 일종의 ‘쇼’로 활용하거나 내부 통제력을 강화하는 시나리오로 여길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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