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실업률 탓에 갱단 득세
“하루 5달러 벌어도 미래 생각”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개의치 않고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은 조금이라도 기다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조국에서 죽는 것보다 미국에서 감옥에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죠.”
25일(현지시간) 인권 옹호 비영리기구인 라틴아메리카워싱턴사무소(WOLA)의 이민 담당자 마우렌 메이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무관용 이민자 정책에도 불구, ‘중미의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온두라스ㆍ엘살바도르ㆍ과테말라 출신 이민자가 줄지 않는 이유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렇게 말했다. 고향에서의 삶이 더 끔찍하기 때문에 목숨 건 탈출을 계속 감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권력이 무력화된 가운데 갱단이 판을 치는 중미 국가의 지옥 같은 상황이 사람들을 미국으로 도망치게 하고 있다. 온두라스에 살던 싱글맘 마누엘라 에르난데스(36)는 최근 다섯 살 된 딸과 함께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몇 달 전부터 폭력배들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는 협박을 받고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한 달에 50달러를 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갱단과 함께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높은 실업률은 갱단이 득세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과거 갱단에 소속돼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강탈해 한 달에 1,000달러 정도를 벌었다는 엘살바도르의 카를로스 아르구에타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누군가 마약을 팔거나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 25달러를 준다고 하면 선뜻 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를 갖게 되면서 개과천선했다. 지금은 이전 소득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돈을 받으며 의류 공장의 경비로 일하고 있다.
중미 트라이앵글 지역에서는 공권력도 잘 통하지 않는다. 미 싱크탱크인 라틴아메리카센터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는 살인사건 중 95%가 범인을 색출하지 못한 채 묻혀 버린다. 2년 전 매형을 잃었다는 온두라스의 에라스무스 살리나스(64)는 “여기에는 정의란 게 없다”며 “경찰이 매형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낼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추방됐다가도 다시 미국행을 시도하는 경우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시설에 구금됐다가 온두라스로 쫓겨난 이반 부에조(17)는 “이곳에서는 돈 벌기 힘들다. 미국에서는 농장에서 일하며 하루에 5달러를 벌 수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다시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남쪽 국경을 통해 불법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신속히 추방한다는 원칙을 거듭 확인했다. 그는 이날 “나는 잘 작동하는 간단한 시스템을 원한다. 불법적으로 들어온 사람은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날 트위터에서도 불법 이민자를 침입자로 묘사하며 “우리나라를 침입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며 “소송 없이 그들을 즉시 떠나온 곳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nknow@han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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