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디자인비엔날레 단독 주관
수익 창출 비즈니스 전시로 바꿔
역대 행사 중 처음으로 흑자
투자 유치 ‘벤처 페스티벌’ 등
19개국서 213개 업체나 참가
지역상품 홍보서 96억원 수출
지역 중소기업 서비스·마케팅
디자인 중심으로 경쟁력 키워
도심재생사업에도 새 모델 도전
“네? 이건 순수미술 전람회가 아닌데요.”
제7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한창이던 지난해 9월 20일 저녁 광주의 한 커피숍. 테이블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올리던 박유복 (재)광주디자인센터 원장의 손이 갑자기 얼음처럼 굳어졌다. “혹시,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어떻게 보시느냐”며 조심스레 던진 질문에 “그냥 디자인 전시회 아니냐”는 기자의 ‘과문한’ 답변이 귀에 날아와 꽂힌 터였다. 행사 성공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의 입에선 “이거 큰일이네”, “정말 기자들도 그렇게 생각합니까”라는 말이 연방 흘러나왔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광주비엔날레처럼 디자인의 예술적 가치를 담은 작품을 전시하는 순수미술 행사쯤으로 여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자세를 고쳐 앉던 그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경제(행사)”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은 마치 ‘기자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꾸짖음과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좀 배우셔야겠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자의 ‘소심한 반격’이 이어졌다. “그럼 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관련 기사가 신문의 경제면이 아닌 문화면에 실릴까요?” 현대미술 전문기관인 (재)광주비엔날레가 2005~2013년까지 모두 5차례나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주관했다는 사실을 에둘러 꼬집은 것이다. 그러자 그의 입에선 “아~” 하는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한 방 맞았다”던 그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키워드는 결국 ‘경제’라는 걸 확인시켜 드리겠다”고 자신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그는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그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사상 처음으로 ‘디자인 비즈니스’ 행사를 도입, 지역 기업들이 30억원에 달하는 해외 수출계약을 맺게 하는 등 모두 5,000만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
“디자인과 산업을 접목시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던 광주디자인센터가 마침내 긴 겨울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디자이노믹스’를 표방하며 닻을 올린 지 12년 만에 지역 경제를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광주디자인센터는 2006년 3월 광주시 출연기관으로 문을 열었다. “국토 서남권의 디자인 및 연관 산업 육성과 지역 디자인산업 진흥에 힘쓰겠다.” 목표는 컸다. 제조업 등 산업기반이 열악한 곳에서 자치단체가 디자인에 관심을 쏟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여기엔 적은 예산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와 치적을 홍보하는 데 디자인만한 효과적인 정책이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지역 중소기업들이 디자인 중심 서비스와 마케팅으로 기업 경쟁력을 키우고 고객과 시장을 확장하는 효과를 만들어 내겠다는 원대한 꿈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기업에 디자인 DNA를 심겠다”는 총론은 있지만 이를 실행할 각론의 한 축인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콘텐츠가 부실한 탓이었다. 기업이나 행정기관 등이 디자인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디자인 역량을 어떻게 키우고, 또 어떻게 경영에 적용해야 하는지 몰랐던 셈이다.
광주디자인센터의 한 관계자는 “디자인산업 정책의 핵심인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그간 광주비엔날레재단에서 주관하면서 행사 내용이 미학적 담론으로 흘러 디자인을 통한 산업 발전에 한계가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디자인비엔날레가 미적 가치와 작품성이 강조된 전시 행사 중심으로 진행돼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 창출 활동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실제 1~6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딱히 내놓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생산유발효과는 2011년(4회) 224억7,000만원에서 2013년(5회) 131억3,500만원으로 떨어지더니 2015년(6회)엔 79억5,700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 고용유발효과도 2015년엔 181명으로 바닥을 쳤다. 2년 마다 17~59일간 치러지는 행사를 위해 막대한 예산(23억~59억원)을 쏟아 부은 데 비하면 초라한 짝이 없는 성적표다.
이랬던 광주디자인센터가 지난해엔 확 달라졌다. 디자인비엔날레를 단독 주관하면서 역대 행사 중 처음으로 흑자를 낸 것이다. 행사기간(46일) 입장권과 디자인 상품 판매 수익, 기부ㆍ후원금 등을 통해 10억3,200만원을 벌어들였다. 광주디자인센터가 기존 디자인 담론을 제시하는 데 그쳤던 디자인비엔날레를 지역 기업이 수익 창출을 도모하는 비즈니스 전시로 체질 개선을 시도한 게 제대로 먹혀 들었다.
해외 바이어 초청 B2B(기업간 거래) 행사인 ‘비즈니스 라운지’와 지역 중소기업 및 창업기업들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59개 기업 300여명)의 투자유치를 지원하는 ‘벤처 마이닝 페스티벌’, 쇼핑몰 공간인 ‘디자인 마켓’이 대표적이다. 이들 행사엔 미국, 일본 등 19개국 213개 기업과 97명의 디자이너, 649개 디자인 상품이 참여했다. 이들 행사는 중소기업 지원기관과 금융기관, 대학 등 18개 기관이 협업으로 만들어 낸 것이어서 ‘전략적 디자인 관리’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광주디자인센터가 디자인비엔날레를 통해 국내외에 디자인의 트랜드를 제시하고 다양한 비즈니스 프로그램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면서 지역 경제활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실제 광주디자인센터는 행사 기간 중에도 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재 전시회인 ‘2017 홍콩 메가쇼 Part 1’에 지역 우수상품 공동 홍보관을 운영, 10개 디자인기업이 96억원의 수출계약을 하는데 돕기도 했다.
광주디자인센터는 도심재생사업에도 디자인 마인드의 확장성을 높여가고 있다. 광주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남구 양림동 펭귄마을에 조성 중인 주민 중심의 자립형 공예특화거리를 디자인 중심 거리 구축과 공예 입주작가 육성 및 창업마케팅 지원 등이 유기적으로 접목된 새로운 도심재생 모델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박 원장은 “다양한 분야와 융복합이 가능한 디자인은 콘텐츠의 가치를 배가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가가치도 향상시키는 만능 재주꾼”이라며 “디자인 진흥과 지역 디자인 특화사업, 기업의 디자인 개발 지원, 디자인 공동 연구개발, 디자인 국제교류 등을 적극 펼쳐 광주디지인센터가 명실공히 지역기업의 수출창구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렛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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