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14~16세기 문명인 아즈테카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 이곳에 위치한 마요르 신전에선 수호신인 위칠로포치틀리와 물의 신 트라로크를 위한 인신공양이 이뤄졌다. 사제는 제물이 된 산 사람의 몸을 갈라 신에게 심장을 바쳤다. 아즈텍인들은 인간의 희생이 신들을 즐겁게 한다고 여겼다. 인간의 희생이 없으면 세상이 계속되지 않을 것이로 생각했다.
제물이 된 이들의 몸은 인신공양 이후 또 다른 종교 장소로 옮겨졌다. 사제들은 이곳에서 현대의 수술칼만큼이나 날카로운 흑요석 칼로 제물의 몸에서 머리를 분리한 뒤 얼굴 피부ㆍ근육을 발라냈다. 그렇게 얻은 두개골 양쪽에 큰 구멍을 뚫었다. 같은 방식으로 얻은 여러 두개골을 두꺼운 나무로 꿰어 마요르 신전 앞에 걸어뒀다. ‘해골의 벽’으로 볼 수 있는 촘판틀리는 너비가 36m, 높이가 5m에 달했고, 1486년~1502년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1521년 야만적이라는 이유로 촘판틀리를 파괴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촘판틀리에 13만개의 두개골이 전시돼 있었다는 등 관련 기록을 남겼다. 최근 그 잔해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누가 어떻게 희생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아즈텍 제국에서 인신공양 제물로 바쳐진 그들은 누구였을까.
지난달 22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표지논문으로 소개된 멕시코 국립인류역사연구소(INAH) 연구진의 연구결과는 흥미로우면서 으스스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내놨다. 이들은 2016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수집한 180개의 온전한 두개골과 수천 개의 두개골 조각을 분석했다. 그 결과 75%가 약 20~35세 사이의 남성이었고, 나머지는 여성(20%)과 어린이(5%)였다. 연구진은 연령ㆍ성별이 다양한 것으로 볼 때 전쟁포로로 잡혔거나, 시장에서 노예로 팔린 사람들이 인신공양 제물이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곧바로 희생되진 않았다. 두개골 뼈와 치아에 포함된 산소와 스트론튬의 동위원소를 살펴본 결과다. 치아에 있는 동위원소를 분석하면 그 사람이 어린 시절 살았던 환경을 유추할 수 있다. 뼛속 동위원소는 죽기 직전 거주환경이 어땠는지 알려준다. 연구진은 “희생자들의 출신 지역이 다양했지만 희생되기 전에 테노치티틀란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동화과정을 거친 뒤 인신공양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신공양은 신의 가호를 받기 위한 종교적 이유뿐 아니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행해졌다. 아즈텍 제국 역시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는 점에서 지배 수단으로서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쳤을 수 있다.
2016년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호주ㆍ뉴질랜드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연구진은 태평양 섬에서 살았던 93개 원시 부족의 제사의식을 조사했다. 이들 중 40개 부족(43%)에게서 인신공양 문화가 발견됐다. 특이한 건 사회적 계급이 엄격할수록 인신공양 비율도 높아졌다는 점이다. 권력ㆍ신분이 자식에게 계승되지 않아 비교적 평등사회로 구분된 20개 부족에선 5곳(25%)만 인신공양을 행했다. 그러나 신분이 세습되는 46개 계층사회 부족에선 17곳(37%)이, 사회적으로 큰 우대를 받는 특권층 신분마저 대물림되는 27개 계급사회 부족에선 18곳(67%)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인신공양 희생양은 보통 노예나 포로, 부족 최하층민이었다.
연구진은 “종교란 이름으로 행해진 인신공양은 지배층이 공포감을 조성해 지배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인 매우 잔인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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