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철수ㆍ재배치 등 검토 시작”
폴란드로 기지 이전 등 내비쳐
나토에 국방비 증액 본격 압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북한 비핵화 압박에서 한국 정부에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수시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내비쳤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의 핵심인 독일 주둔 미군을 유럽지역 동맹과의 관계에서 이익 관철을 위한 협상카드로 꺼내 들고 나섰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29일 소식통을 인용, 미 국방부가 3만5,000명에 이르는 주독 미군 철수 혹은 재배치의 영향 및 비용을 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독일을 위시한 나토 회원국들에 대해 안보 비용을 더 부담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압박 카드로 해석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를 ‘한물간 동맹’이라고 비난한 바 있어 일부에선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다만 백악관 국가안보보장회의(NSC)는 성명을 통해 “국방부에 주독미군 재배치 분석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WP에 따르면 국방부가 평가 중인 시나리오는 주독 미군 대부분을 본토로 철군시키는 안과 미군 기지를 폴란드로 이전하는 방안이다. 폴란드는 미군 기지 유치를 위해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을 내겠다고 제안하는 등 적극적이고, 우파 포퓰리즘인 폴란드 정부의 성향도 트럼프 대통령과 죽이 맞는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전통 우방인 독일과는 냉랭한 관계다. WP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은 지난달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2024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1.5%까지 국방지출을 늘리겠다고 밝혀 백악관의 실망을 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들에게 GDP의 2.0%까지 국방비를 올리라고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독일에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미국이 60년간 투자한 매몰비용과 비교하면 폴란드의 제안은 쥐꼬리 수준이고, 독일이 주독미군 예산의 33%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독 미군의 실제 철군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일련의 움직임은 예전 같지 않은 미국과 나토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이 신문은 풀이했다.
한편 지난달 29일 제임스 D 멜빌 주 에스토니아 미국 대사가 공개적으로 사임 의사를 밝힌 것도 미국과 유럽 동맹국간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은 증거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 영국 등 유럽지역에서 30년간 활동한 베테랑 외교관인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 ‘유럽연합(EU)이 미국을 이용해 먹고 있다’, ‘유럽이 미국의 돼지 저금통을 털어간다’, ‘나토는 북미자유협정만큼 나쁘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잘못됐으며, 이제 내가 그만둬야 할 때라는 걸 의미한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 나토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국무부는 그의 사임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구 소련 영토였으나 소련 해체 후 나토 회원국이 된 발트 3국 중 한 곳인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의 서진을 막을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사실상 인정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등 동맹국인 에스토니아의 안보 위협은 외면하는 분위기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