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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의 식물과 인간] 잣나무

입력
2018.07.0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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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식물을 통하여 소박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오늘날 나무가 경외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효능 못지 않게 이용상 시행착오에서 오는 두려움과 신비에 대한 상징성 때문이다. 인간은 식물이나 열매들이 갖고 있는 신기한 효능에 대하여 눈을 뜨고 아플 때 사용하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잣나무는 옛날부터 우리 생활과 밀접했다. 백두산과 압록강 상류에는 잣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속에는 잣나무 외 백송, 곰솔, 리기다소나무 등 10여 종이 자생하고 있고 세계적으로는 수백여 종이 있다.

우리 조상은 겨울에도 푸른 잎을 지니고 곧게 뻗은 잣나무를 소나무와 더불어 불변성으로 여겨 양생, 부귀, 자손 번성, 풍요, 번창, 장수를 상징한다고 봤다. 도교에서는 사계절 늘 푸르기 때문에 장생불사(長生不死)의 관념으로 보며, 불교에서는 진리를 깨닫는 수행과 밀접하며, 유교에서는 경세 이념의 전통과 관련이 깊다.

잣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정월(正月)을 뜻해 연말 연시의 세화(歲畵)에 알맞은 소재였다. 김정희의 송백은 이런 특성을 세한도(歲寒圖)에 표현했고, 청자상감 문양이나 청화백자(靑華白磁) 문양과 산수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

우리 전통 민속에는 잣과 관련된 ‘잣불놀이’가 있다. 정월대보름 전날 밤 잣의 내피를 벗기고 열두 개를 각각 바늘이나 솔잎에 꿰어 열두 달을 정해 놓고 불을 붙여 길흉의 점을 치기도 했다. 조선시대 여성이 임신을 하면 잣나무 아래에서 마음을 다스렸다. 정월 초하룻날에는 잣나무 잎으로 만든 술을 마시면 액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해서 마셨고, 문간에 잣나무를 심으면 자손이 부귀를 누리게 되고 질병이 얼씬도 못한다 하여 심었다.

잣나무는 소나무 종류 중 맏형으로 씨(종자)가 가장 큰 소나무라 하여 ‘송자송(松子松)’, 잎이 다섯 장이라 하여 ‘오엽송(五葉松)’, 목재의 색깔이 붉은 빛을 띤다고 하여 ‘홍송(海松)’ 신라에서 난다고 하여 ‘신라송(新羅松)’이라 했고, 중국에서는 향이 좋아 ‘옥각향(玉角香)’, 기름이 많아 ‘유송(油松)’이라고 불렀다.

잣나무의 자랑은 잣송이 열매이다. 잣송이 하나에서 100여 개 정도 나온다. 동의도감과 본초강목에 “잣을 장복하면 몸이 산뜻해 진다”고 했고, 중국의 신농씨는 “잣을 많이 먹어 장수한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로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정과ㆍ식혜ㆍ신선로에 빠지면 의미가 없을 정도며, 잣죽ㆍ강정 등 각종 요리에 약방의 감초처럼 쓰인다.

잣에는 단백질, 유지방, 필수 지방산이 함유돼 있다. 잣죽은 소화가 잘돼 병후의 회복 음식으로도 좋다. 왕실에서 왕은 잣술인 송자주를 담가서 상복했다. 잣의 성미는 온화하여 주로 폐(기침, 가래)를 다스리는 데 쓰고, 허약체질을 보하고 피부윤택에 도움을 준다. 잣술을 만들 때는 덜 익은 파란 잣송이를 통째로 따서 용기에 넣고 소주를 부어 3개월 후에 마신다. 민간에서 열매의 속껍질은 화상, 송진은 상처, 잎은 윈기회복, 잎을 태운 재는 각종 성병(임질, 매독)에 비상약으로 썼다. 잣나무 목재는 향기가 좋을뿐더러 틀어짐이나 수축과 팽창이 적고 가벼워 고급 건축재와 가구재, 관재(棺材)로 사용된다.

잣나무는 여전히 한국인이 아끼는 나무 중 하나이다. 잣나무 변종으로는 설악산과 금강산의 꼭대기에 자라는 눈잣나무와 울릉도에서 자라는 잎의 길이가 짧은 섬잣나무가 자생한다. 우리나라 최대 잣나무가 자생하는 가평에서는 해마다 잣향기 숲체험을 하고 있다.

정구영 식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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