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중에도 전류 흐르는 공법 탓
안전장비 불구 2년간 25명 피해
하청 재계약 불이익 불안감에
사고 안 알려 산재도 못 받아
40대 배전 근로자 안성식(가명)씨는 올해 초 서울 모처에서 절연 장갑을 낀 채 전봇대 자동개폐기 교체 공사를 했다. 교체를 마친 뒤 마무리 접지 작업을 하던 중 갑자기 거센 불꽃이 튀어 옷에 불이 붙으며 안씨는 얼굴을 포함한 상반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안씨는 수 차례 피부 이식 수술을 받고 현재도 병원 입원 중이다.
안씨가 속해 있는 배전공사 하도급업체는 원청과 재계약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한국전력공사 등에 사고 사실을 아직 보고하지 않은 상황. 이 때문에 안씨는 산업재해 신청도 못하고 있다.
1980년대에 가구당 연 평균 800~900분에 달했던 정전(停電) 시간은 지난해 세계 최단 수준인 9분대까지 감소했다. 여기엔 전류를 끊지 않은 채 배선 작업을 함으로써 정전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직접 활선(活線)’공법 덕이 컸다. 하지만 끊김 없는 전기 공급이라는 편리함 뒤에는 2만2,900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선 곁에서 일을 해야 하는 근로자들의 안전 사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3일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은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 존중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나서서 직접 활선을 완전히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건설노조는 이날부터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직접 활선 공법은 배전공사 시 근로자가 전류가 흐르는 활선을 직접 손으로 다루는 공법이다. 절연 장갑, 방염복 등을 착용한다고 해도 감전, 화상 사고 등이 끊이지 않는다. 50대 김모씨는 2015년 7월21일 인천 남구 남부경찰서 인근에서 노후 변압기 교체 작업을 하다가 합선 사고로 몸의 3분의 2 부위에 3도 화상을 입어 5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산재 인정은 됐지만, 여름이면 이식 수술을 한 피부가 가려워 일을 할 수 없어 몇 푼 안 되는 장애연금으로 근근이 생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 사고가 이어지자 한전은 2016년 6월 직접 활선을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간접 활선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간접 활선은 작업자가 손으로 전선을 다루는 대신 2~3m 떨어진 거리에서 공구(스마트스틱)를 이용해 작업을 하고, 작업 중인 구간에는 전기가 흐르지 않도록 우회하는(바이패스 케이블 공법) 방식으로 안전 사고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작업 중 전류 우회 공법 있지만
비용 핑계로 한전 소극적 대응”
배선 근로자들, 청와대 앞 농성
그러나 단계적 도입을 내세워 한전이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아 심각한 재해가 계속된다는 것이 건설노조의 주장이다. 노조에 따르면 한전이 직접 활선 폐지 계획을 밝힌 2016년 이후 현재까지 관련 재해를 입은 근로자가 25명에 달한다. 이중 6명은 사고 후유증으로 팔 등 신체 일부를 절단했다고 한다. 사고뿐 아니라 질환에 걸릴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3월 근로복지공단은 26년간 고압선 배전설비 보수 일을 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고 장상근(당시 53세)씨에 대해 ‘간접 연관성이 인정된다’며 산업재해를 판정을 내렸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지금도 바이패스 케이블 공법 등을 활용하면 작업자 안전 사고 위험을 낮출 수 있지만 한전이 비용 문제로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현재 기술로 바이패스 케이블 공법을 하면 도심에서는 수백 가구가 서너 시간 동안 정전 피해를 보게 돼 당장 전면 도입이 어렵고, 협력업체들도 관련 장비 구입에 드는 비용을 부담스러워 한다”면서 “2021년까지 정전이 되는 구간을 대폭 축소하는 기술을 도입해 바이패스 케이블 공법을 전면적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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