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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보조로 전락한 사람, 무인화의 역설

입력
2018.07.05 04:40
수정
2018.07.05 11:1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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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경전철, 사실은 유인 운행

퇴직 기관사들이 안전요원 근무

운행 중단ㆍ지연 등 잦은 오류에

인력 축소 계획은 전면 재검토

지난달 27일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과 강북구 우이동을 연결하는 우이신설선 전동차에 안전요원이 탑승해 있다. 서울 최초의 경전철인 우이신설선은 기관사 없이 운영되는 무인운전시스템으로 설계됐지만 운행 중단이나 사고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기관사 면허를 갖고 있는 안전요원이 항시 탑승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과 강북구 우이동을 연결하는 우이신설선 전동차에 안전요원이 탑승해 있다. 서울 최초의 경전철인 우이신설선은 기관사 없이 운영되는 무인운전시스템으로 설계됐지만 운행 중단이나 사고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기관사 면허를 갖고 있는 안전요원이 항시 탑승하고 있다.
우이신설선 안전요원이 비상시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장치와 계기판을 확인하고 있다. 이 부분은 평상시에는 가려져 있다.
우이신설선 안전요원이 비상시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장치와 계기판을 확인하고 있다. 이 부분은 평상시에는 가려져 있다.
승객이 붐빌 경우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안전요원은 작은 크기의 간이 의자를 사용한다.
승객이 붐빌 경우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안전요원은 작은 크기의 간이 의자를 사용한다.
열차 진행 방향이 바뀌는 기점 역에서 반대편으로 이동하고 있는 안전요원.
열차 진행 방향이 바뀌는 기점 역에서 반대편으로 이동하고 있는 안전요원.

서울 최초의 경전철 우이신설선 전동차에는 운전실이 없다. 열차 운행부터 출입문 개폐까지 자동으로 작동하는 무인 열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관사가 항시 탑승한 ‘유인’ 열차다. 정확히 말하면 기관사 자격증을 가진 안전요원이 전동차 고장이나 사고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시스템이다. 운전실이 아닌 객차 내에 머물며 불완전한 시스템을 보조하는 기관사, 객차 맨 앞 구석에 놓인 그의 간이 의자는 시스템이 완벽해지는 어느 날 사라질 것이다.

4차산업혁명의 상징으로 통하는 무인 시스템은 비용 절감과 효율성, 이용자 편의 등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그러나 미흡한 초기 기술력과 급격한 변화에 대한 부적응으로 인해 무인 기기를 유인으로 운영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인화 과정에서 시스템 유지의 보조 수단으로 전락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들여다보았다.

#무인 경전철의 역설, 안전요원

우이신설선 전동차에 탑승하는 안전요원은 4일 현재 총 50명으로 퇴직 기관사가 대부분이다. 노느니 이만한 일자리가 어디냐 싶지만 무인화를 전제로 한 시한부 단순 노동에서 ‘성취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30년 이상 기관사로 일하다 퇴직 후 안전요원이 된 A씨는 “열차 운행부터 출입문 여닫는 것까지 기계가 다 알아서 하고 문제가 생기면 보조하는 역할인데 무슨 노동의 가치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기관사 시절 안전은 물론 승객들이 최대한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운전을 할 때면 소소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때마침 젊은 안전요원 여럿이 퇴사한 데 대해 안전요원 B씨는 “젊은 친구들한테는 미래가 없는 일자리에 연연하느니 실업급여 타면서 공공기관 취업 준비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요원의 책임이나 의무가 법으로 규정되지 않다 보니 업무 범위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현행 철도안전법은 철도 사고 발생 시 운전업무종사자(기관사)와 여객승무종사자(승무원)의 책임과 의무는 규정하고 있지만 무인 전동차 안전요원에 대한 규정은 없다. 황철우 서울교통공사노조 사무처장은 “법적 책임이나 의무, 권한이 없는 안전요원은 마네킹이나 마찬가지”라며 “회사로선 안전을 완벽히 지킬 수 없는 시스템에서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인 열차의 유인화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안정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과 강북구 우이동을 잇는 우이신설선은 사전에 입력된 명령에 의해 자동으로 운행되는 ‘UTO(unattended train operation)’ 방식으로 지하철 무인화 단계 중 가장 높은 단계로 설계됐다. 그러나 개통 이후 3차례나 운행이 중단되고 출입문 작동 장애로 인한 운행 지연도 빈번하다. 때문에 운영사인 우이신설경전철운영은 개통 1주년에 맞춰 안전요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려던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시스템 불안정 외에 대피 시 안전 확보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안전요원 B씨는 “우이신설선은 전기 공급 장치가 선로를 따라 설치된 구조인데 비상탈출 시 감전에 의한 2차 사고를 막기 위해선 안전한 대피를 안내할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자율계산대 앞에서 한 계산원이 대기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자율계산대 앞에서 한 계산원이 대기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시내 한 대형 병원에서 직원이 고객의 무인 수납기 사용을 돕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시내 한 대형 병원에서 직원이 고객의 무인 수납기 사용을 돕고 있다.

#병원, 마트도 자동화… 그래도 진짜 무인 시스템은 먼일

주말인 지난달 30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대형 마트 자율 계산대. 계산원 없이 무인으로 운영되는 계산대지만 실제로는 계산원들이 항시 대기하는 또 다른 유인 계산대다. 직원들은 기기 조작법을 일일이 고객에게 설명하거나 아예 직접 처리해 주기도 한다. 상당수 대형 마트에서 미래형 점포 구상의 일환으로 설치를 확대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사용법을 안내하고 돕기 위해 직원이 상주해야 하므로 비용 면에서 큰 이점이 없어 추가 확대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주문 창구를 폐쇄하고 무인 주문기 2대를 설치한 월계동의 한 대형 마트 식당가 역시 주문기 앞에서 직원이 대기한다. 담당 직원의 능숙한 손길 없이는 순식간에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기 때문이다. 특히, 노인 고객들의 경우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만을 토로하기까지 한다. 지난 주말 이곳을 찾은 한 노인은 “직접 주문을 받으면 될 것을 왜 기계만 이용하라고 강요하느냐”며 직원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무인 주문기의 편의성은 어디로 간 걸까.

처방전 발급과 병원비 수납까지 가능한 병원 무인 수납기 앞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이어진다.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 병원은 접수창구와 별도로 무인 수납기를 설치한 후 창구 직원이 교대로 무인 수납기 앞에 상주한다. 기기 조작이 서툰 나이 든 환자가 많다 보니 벌어지는 상황이다.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무인 기술의 도입 목적은 비용 절감뿐 아니라 노동의 질을 유지하고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를 향상시켜 공공이익을 증대시키는 데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2일 오후 퇴근길 승객으로 붐비는 우이신설선 열차 한쪽에서 안전요원이 대기하고 있다.
2일 오후 퇴근길 승객으로 붐비는 우이신설선 열차 한쪽에서 안전요원이 대기하고 있다.
2일 오후 승객을 태운 우이신설선 전동차가 이동하고 있다.
2일 오후 승객을 태운 우이신설선 전동차가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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