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서울 군자동의 옥탑방에 살 때였습니다. 한참 첫 직장에 적응하려 노력하던 초여름 저녁 퇴근길에 동네의 식물 트럭 아저씨에게서 ‘꽃기린’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작은 화분을 샀습니다. 손톱만 한 선홍색 꽃이 피어 있고 가지에는 가시가 빼꼼하게 돋아 있던 식물이었습니다. 인테리어 스타일링을 하면서 이제는 멋진 화초나 나무의 이름도 꽤 알게 됐지만 그때만 해도 식물은 동네에 가끔 찾아오는 트럭에서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물 주는 날도 잘 지키고 볕이 잘 쬐어 주었건만 꽃기린은 몇 달 가지 않아 시들시들하더니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옥탑방보다 조금 큰 원룸으로 이사를 하게 된 이듬해 겨울에는 동네 시장에 있던 화원에서 허리 높이쯤 되는 알로카시아를 샀습니다. 검은 플라스틱 화분에 심어져 있던 것을 꼭 ‘토분’에 심어 달라고 화원에 부탁해 며칠을 기다려 집에 들였습니다. 방 한가운데에 두고 갖은 정성을 쏟았지만 처음 얼마간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던 알로카시아는 건조하고 반 음지였던 원룸에서 역시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키우는 식물마다 잘 살지 못하니 어느 순간 식물을 들이는 일이 죄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결심한 후 어쩐지 이 집에서는 식물이 잘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매번 이사할 때마다 비슷한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선이 예쁜 배나무, 사과나무와 외국 인테리어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잎사귀 모양이 예쁜 무화과나무, 그리고 소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금송’ 이라는 식물을 사 왔습니다. 화분도 하나하나 다른 모양의 토분으로 고르고 적당한 자리를 고민하여 배치했습니다. 어떻게 되었냐고요? 반년 정도 지났을 때 이미 대실패… 앞서 말한 모든 식물이 말라 죽거나 시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과실수는 실내에서 키우는 게 몹시 까다롭다고 하더군요.
불행 중 다행으로 (큰 식물들에 소질이 없는 듯 하여) 중간중간 조금 작은 식물들을 인터넷으로 야금야금 사서 키웠는데 필레아 페페, 몬스테라, 스파티필름 같은 것들은 아직도 집에 남아 생기를 주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집에서 키울 식물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우리 집에서 살아남은 녀석들의 이름을 말합니다. 내가 키웠는데 아직도 살아있다, 라고 말하면 다들 용기를 갖는 눈치입니다.
공간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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