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와 거인 중 누가 더 멀리 볼 수 있을까. 둘 다 시력이 비슷하다면 아마 키 큰 거인일 것이다. 여기서 퀴즈 하나. 그러면 난쟁이가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것은 난쟁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것이다. 근대 과학혁명을 완성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1676년에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뉴턴이 처음 한 것은 아니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의 연구에 의하면, 뉴턴의 이 명언은 이전 선각자의 말에서 빌려 온 것이다. 12세기에 존 솔즈베리는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있는 난쟁이들과 같기 때문에 거인보다 더 많이, 더 멀리 볼 수 있지만, 이는 우리 시력이 좋거나 신체가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이전 1130년에는 베르나르 사르트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처럼 우리는 고대인보다 더 많이, 더 멀리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어쨌건 과학혁명은 뉴턴 혼자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 하비 등 앞선 과학자의 지난한 연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뉴턴이 언급한 거인의 업적으로는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 갈릴레이의 운동법칙 등을 들 수 있다. 오늘날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고 스스로도 자전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사실 이는 약 200년에 걸쳐 이뤄진 과학혁명 덕분이다. 포스텍의 임경순 교수는 과학혁명으로 인한 세계관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가령 1500년경 중세 유럽인들은 우주는 유한하고 그 중심은 지구이며 지상계와 천상계는 전혀 다르다고 믿었다. 하지만 과학혁명 이후 1700년경 사람들은 우주는 무한한 크기이고 지구는 태양계에 속하며, 천동설이 아니라 지동설이 옳다는 세계관을 갖게 된다. 관측, 실험, 탐구 등을 통해 우주, 물질, 생명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고 넓어진 것이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려면 멀리, 그리고 크게 봐야 한다. 더 멀리 보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역사학의 흐름 중 빅히스토리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 거대사라고 부르는데, 빅히스토리의 창시자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는 인간 역사를 생명, 지구, 우주의 역사로까지 확대하면 결국 모든 것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프스 산맥의 골짜기에서 보면 주변 풍경들만 보이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장엄한 알프스 산맥 전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주의 탄생, 지구의 역사, 인류의 진화 등 방대한 지식은 몇몇 뛰어난 학자들의 업적이 아니며, 단시간에 만들어진 지식도 아니다. 앞선 지식은 새로운 지식의 토대가 되고 지식은 계속 축적되면서 발전하는 법이다.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멋진 것들은 수많은 세대가 노력한 결과물이란 것을,(···) 명심해야 해요. 이 모든 게 유산으로 내려온 것은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 소중히 가꾸다가 거기에 새로운 것을 보태 언젠가 여러분 자식들에게 성실하게 넘겨 주라는 뜻입니다.” 새길만한 어록을 많이 남긴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지식은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되고 전승된 결과물임을 강조했다. 천지개벽 하듯 갑자기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는 지식은 없다. 모든 지식은 앞서 고민한 지식인, 학자들의 탐구와 사색을 거치면서 쌓여 온 것들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류가 누리는 과학이나 지식은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이 우주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집단지성, 지식 축적과 전승의 힘이다. 우리는 누구나 주변에 고마운 거인들을 두고 있다. 그것은 책일 수도 있고, 부모, 스승, 전문가, 동료, 멘토, 친구일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이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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