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신뢰 무너진 전대 미문의 상황
교육 의료 언론 관료 등 기둥도 흔들려
지식인과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해결책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후 먼저 떠오른 생각은 “김정은 위원장, 이제 미래로 갑시다”였다. 한반도의 밝은 미래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으니 한국인으로서 면목이 섰다. 물론 국내외 일각의 우려처럼 북한정권이 또다시 시간을 끌어가며 딴생각을 품는다면 국제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을 영원히 회복하기 어렵게 될 것이므로 이번에는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의 빠른 조처들을 통해 신뢰를 얻어가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열고 통일의 과정을 차분히 밟아가는 일이다. 한반도의 허리가 갈라진 비정상적 상태로 선조들께서 그토록 갈망하던 부강한 선진조국을 이루었노라 말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 내부의 기본을 바로 세워 ‘신뢰사회’를 구축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기초일 수 있다. 사회적 신뢰는 사회 공동체의 협력, 상생의 기반을 이루는 무형의 자산이자,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의 기본적 골간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20여 년 전 저서 ‘트러스트(Trust)’를 통해 당시의 대한민국을 저신뢰(low trust) 국가로 분류하면서 이를 개선하지 못하면 중진국의 덫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측했다.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신뢰 자본은 중진국 수준에도 미달된다. 안타깝게도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이며 중추적 기능을 하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에도 의문이 제기되면서 설자리를 잃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필자는 평소부터 선진민주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다섯 가지 기둥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첫째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이다. 국민들이 사법부의 판결을 믿지 못한다면 안심하고 살 수 있을까. 과거 대법원 행정처의 이해하기 힘든 행위들로 신성한 재판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까지 신뢰가 무너진다면 대한민국은 존립할 수 없다.
두 번째 기둥은 교육계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 미래를 짊어져야 할 교육이 제대로 서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자들에게 소명의식을 불어넣고 존경심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세 번째 기둥은 의료계이다. 의사의 진단을 불신하는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의료계의 왜곡현상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면서 의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네 번째는 언론계이다. 언론의 정론직필이 무뎌진다면 사회는 균형을 잃고 정화기능이 급격히 약화될 것이다. 가짜뉴스와 댓글조작 등 일련의 사태로 국민들은 불신의 늪에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 다섯째는 관료사회이다.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는 여전히 세계 50위권 수준이다. 여기에는 관료들의 부패가 크게 한몫하고 있다. 공직자들의 투철한 국가관은 기대난망이고 권력과 금력에 대한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면 국가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상의 다섯 개의 기둥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국민 행복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기초가 돼야 할 사회적 신뢰가 바닥부터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불신이 만연하고 만인이 만인을 적대시하는 현실을 방치하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신뢰사회 구축은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지금부터라도 범정부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는 적폐청산을 그 일환이라고 내세울지 모르겠으나, 더 미래지향적이고 국민통합적인 방안들이 절실하다.
정부부터 공정하고 투명해져야 하고, 청소년들을 위한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조직 사이에 배려와 이해심, 관용과 용서가 꽃피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각자가 주어진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고 약속과 신의를 지키려고 노력할 때 나라다운 나라, 신뢰하는 사회는 가능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지식인, 각 분야의 지도층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면 선진국 수준의 신뢰자본도 가능하지 않을까!
정의화 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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