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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의 어제]유해 발굴 협력이 물꼬, 美-베트남 국교 정상화

입력
2018.07.08 17:00
수정
2018.07.09 00:4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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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찾은 폼페이오 “북한도 베트남 길 따라가길”

지난 3월 베트남 다낭에 입항한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에서 한 미 해군 장교가 베트남 국기가 걸려 있는 격납고에 서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 3월 베트남 다낭에 입항한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에서 한 미 해군 장교가 베트남 국기가 걸려 있는 격납고에 서 있다. EPA 연합뉴스

베트남 최대 도시 호찌민의 중심부 동커이 거리를 내려다 보는 렉스호텔 루프탑 바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브리핑 룸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구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베트남의 맹렬한 기세로 미군은 패색이 완연했지만 승전보가 잇따르고 있다는 거짓 브리핑으로 일관했고, 기자들은 당국의 태도를 ‘Five O'Clock Follies(오후 5시의 허튼소리)’라고 비꼬았다. 미국의 개입에도 북베트남의 승리로 공산화가 된 베트남, 43년이 흐른 이 곳에선 같은 이름을 딴 칵테일이 미국인들을 비롯한 전세계 관광객들 사이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호텔 바 관리자인 응웬따인뚜언씨는 USA투데이에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관심 없다. 우리는 미래만 본다”고 말했다.

베트남이 동남아 신흥국으로 부상하며 경제적 발전을 이루게 된 데는 세계 최강국이면서도 적대 관계에 있던 미국과의 수교(1995년 7월 11일)가 결정적 계기였다. 1986년부터 개혁 개방 조치인 ‘도이머이(Doi Moi)’정책을 실시했던 베트남이었지만, 미국의 경제 제재는 극복할 수 없는 걸림돌이었다.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미국 입장에선 적국과의 손을 잡는 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터. 그러나 미국 역시 과거를 극복하고 새 역사를 써내려 가길 원했다. 그 편이 미국의 정치ㆍ경제적 이익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수교를 적극 지지했던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은 지난해 하버드 국제리뷰에 실은 기고글에서 “동남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베트남을 중국의 영향력 하에 두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 도움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당장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이 베트남에 활발히 진출해 황금시장을 독식하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시작은 베트남전 전사 미군의 유해 발굴과 송환이었다. 인도주의 측면은 물론이고 수교를 반대하는 보수 세력을 달래기에도 설득력 있었다. 6년 간 전쟁 포로로 잡혀 있었던 존 매케인 공화당 의원의 적극적인 지지도 커다란 힘이 됐다.

1988년 실종 미군 첫 합동현장 조사 및 발굴 작업을 시작으로 양국 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1994년 2월 경제 제재 해제, 1995년 1월 상호 연락사무소가 개설됐고, 같은 해 7월 빌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베트남과의 관계 정상화를 발표한다. 베트남 철수 이후 20년 만에 적에서 동지로 손을 잡은 것이다. 이후 미국과 베트남은 상호 무역협정을 발효하는 등 경제ㆍ사회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미국과 베트남의 수교 과정을 지켜보며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벌이고 있는 북한 역시 장밋빛 미래를 품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북미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만나 도출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에도 미군 유해 발굴이 명문화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서 유해 발굴은 적성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일종의 시그널인 셈이다. 1박 2일 간 방북 일정을 마치고 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후 경제적 성장을 이룬 베트남의 기적이 당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과 달리 북한은 핵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북한과 미국 역시 1980년대부터 베트남처럼 미군 유해 문제를 고리로 북미 대화를 시작했으나, 북한의 핵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모든 논의가 원점으로 되돌아 갔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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