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경찰관 조현병 환자에 피살
동료 경찰관,주민 조문 잇따라
“경찰관 폭행 솜방망이 처벌 등
직무집행에 비현실적 규정 고쳐야”
경북 영양군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김선현(51) 경감이 40대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자 지역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평소 성실하고 좋은 이웃 같았던 김 경감의 사망을 안타까워하는 추모 행렬이 이어지는 한편, 이번 기회에 무너진 공권력을 바로 세우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빈소가 마련된 안동병원에는 9일 오전 김상운 경북경찰청장, 오후 경찰청장 내정자인 민갑룡 경찰청차장이 조문하는 등 동료 경찰관과 마을 주민 등의 조문이 잇따랐다.
빈소에 모인 동료경찰관들은 “정말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며 침통해했다. 동료들은 김 경감을 “시간개념이 철두철미하고, 주민 안전을 몸소 실천한 경찰관”이라고 입을 모았다. 천상필 영양경찰서 경무과장은 “책임감이 뛰어난 직원으로, 지금까지 각종 표창을 받은 것만 14건”이라며 “지난 1월 전입 후 김 경감 순찰에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김 경감 덕분에 금연에 성공한 직원도 여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김 경감은 “시골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평소 지론에 따라 지난 1월 안동경찰서에서 영양경찰서로 자원해 옮겨왔다. 영양군은 인구 1만7,700여명으로, 1만명 남짓한 울릉군에 이어 경북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가장 적은 지자체다. 화원을 운영하는 아내와 1남1녀를 두고 있다. 지난 2월 전문대를 졸업한 딸은 아버지를 닮아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성금 모금 제안도 나왔다. 충남의 한 경찰관은 경찰 내부게시판에 “일정액 이상 자율적으로 성금을 모아 유족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면 좋겠다”는 글을 남겼다. 또 다른 경찰관은 “전국 경찰관서에 조기를 게양하자”고 제안했다. 경찰청 지휘부와 경북경찰청 직원들은 이날 검은색 근조리본을 달고 김 경감을 애도했다.
침해 받는 공권력을 성토하는 경찰 내부 목소리도 높다.
부산의 한 경찰관은 경찰 내부게시판에 이번 사태는 ▦경찰관 폭행 등 공권력 무시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경찰 집무집행에 대한 비현실적인 법ㆍ규정 ▦현장 초동 대응을 맡은 지구대ㆍ파출소의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 경찰관은 “동료 경찰관 사이엔 ‘범인은 권총으로 쏴 잡지 말고 던져서 잡아라’는 말이 나돌 정도”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테이저건과 총기 사용 매뉴얼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상황과 거리가 멀다”며 “불가피하게 총기를 사용했을 경우에도 각종 보고서에 치이고, 자칫하면 민형사소송에 휘말리기 때문에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경감을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백씨에 대해 이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사건 당시 경위이던 김 경감에 대해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영결식은 10일 오전 10시 영양군민회관에서 경북경찰청장 장으로 열린다. 유해는 화장 후 대전 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김 경감을 숨지게 한 범인은 2011년 1월 사소한 말다툼 끝에 환경미화원을 폭행,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출소 후 입ㆍ퇴원을 반복했으며, 지난 3월 초 입원했다 5월30일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주민들은 “(그대로 입원시켜두라고 했는데)기어이 빼내(퇴원)오더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번 사건 이전에도 수시로 가족의 112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달 29일 “밥을 먹지 않고 애를 먹인다”는 모친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자고 있는 것으로 확인하고 현장에서 철수한 적이 있다. 백씨 모친은 입원비 등의 문제로 계속 입원할 수 없었으며, 퇴원 후 약을 복용했으나 최근 10여일간은 제대로 먹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안동ㆍ영양=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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