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분명한 국경... 영토분쟁 계속
올해 집권 아비 에티오피아 총리
에리트레아 방문 하루 만에 서명
# 유엔, 에리트레아 제재 해제 조짐
억압적 정치 체제 변화 가능성도
에티오피아는 홍해 진출 기회 얻어
아프리카 동북부에서 차가운 대립 관계였던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관계가 대반전을 이뤘다. 두 정상이 서로를 끌어안고 20년을 끌어온 전쟁 상태의 공식 종료를 선언했다.
아비 아메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와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에리트레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에리트레아 수도 아스마라에서 공식적인 “전쟁 상태의 종료”를 선포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전날 아스마라를 처음 방문한 아비 총리가 하루 나절 마주앉은 끝에 두 나라 사이 2년간의 전면전(1998~2000)과 이후 이어진 18년 냉전이 끝을 맺은 것이다.
1993년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한 이래, 두 나라는 불분명한 국경 때문에 영토 다툼을 벌여 왔다. 1998년 국경 소도시 바드메를 둘러싼 분쟁에서 에리트레아 관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전쟁은 8만명 이상을 희생시키며 2년간 지속된 끝에 휴전 협정으로 일단락됐으나, 긴 냉전이 뒤따랐다. 2002년 알제 조약을 근거로 설립된 유엔 국경획정위원회가 바드메를 에리트레아 영토로 결정하자 에티오피아가 반발해 바드메를 넘겨주기를 거부하면서 두 나라는 사실상 교류를 끊었다.
그러나 올해 4월 집권한 아비 총리가 “2000년 체결한 평화 협정을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두 나라 사이 훈풍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호응한 이사이아스 대통령이 지난달 평화협상 대표단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파견했고, 아비 총리의 에리트레아 방문이 즉각 성사되는 등 관계 회복은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두 국가의 협정은 해묵은 대립을 종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양국의 경제 발전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 것으로 예상된다. 일당 독재ㆍ인권 탄압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의 보증을 받아 국제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아비 총리는 9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 제재 재검토를 요청했고 구테흐스 총장도 기자들에게 “(에리트레아) 제재가 무의미해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에리트레아 독립 이후 내륙 국가로 머물던 에티오피아 역시 관계 개선으로 홍해로 진출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얻었다. 에티오피아는 당장 다음주부터 에리트레아와의 항공로를 여는 것은 물론 홍해에 인접한 항구 도시 마사와ㆍ아삽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지부티와 소말리아 등지의 불안한 항구에 의존하던 화물 수송 통로를 다변화한 셈이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전 총리의 권위주의 통치와 이에 반발하는 오로모족 등의 반정부 시위로 허덕이던 에티오피아는 단숨에 ‘아프리카의 뿔’ 지역의 불안한 정세를 뒤집을 국가로 주목받고 있다. 변화의 선두에 선 아비 총리는 정치 민주화ㆍ경제 자유화 행보에 이어 전방위 평화 외교 행보까지 성공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중동 방송 알자지라는 ‘아비마니아’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아비 총리에 대한 열광이 대단하다고 소개했다.
양국의 종전이 ‘아프리카의 북한’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억압적인 에리트레아 정치에도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마저 주목된다. 강제 징집과 무기한 군복무, 언론 탄압 등 이사이아스 대통령의 철권 통치를 정당화한 것이 바로 ‘에티오피아의 안보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동아프리카 전문가 아메드 솔리먼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에티오피아의 위협이 사라진 이상 에리트레아 정치체제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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