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이 나오는 미국 드라마나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경찰과 함께 등장하는 개들이 있다. 개라는 뜻의 영어 단어 케이나인(canine)의 발음을 따 ‘K9’이라 불리는 경찰견들이다. K9들의 활약은 비단 가상 현실에 그치지 않는다. 범죄나 테러현장에서 몸을 날려 파트너인 경찰들을 돕는데 경찰 대신 총을 맞기도 하고, 폭발물이 터져 목숨을 잃기도 한다. 경찰관들은 위험한 현장에서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공무수행에 도움을 주는 K9을 동료로 인식하고 사람과 똑같이 장례식을 치러주고, 부상을 당해 은퇴하는 개들에게는 훈장도 준다고 한다. 경찰뿐 아니라 시민들도 경찰견의 사망이나 부상소식을 접하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애도하고 고마움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주목을 받은 경찰견이 있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 소속 체취증거견 ‘나로’(9세ㆍ수컷)다. 지난달 전남 강진에서 발생한 여고생 실종사건에서 8일만에 시신을 찾아낸 나로는 2015년 북한산에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시신을 찾아낸 이력까지 알려지면서 ‘스타견’이 됐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경찰견들은 100여 마리가 조금 넘는데 폭발물 탐지견이 가장 많다. 나로처럼 과학수사대 소속으로 활동하는 체취증거견은 총 17마리. 이 중 2마리는 지금 공부 중이다. 각 지방경찰청에 한두 마리씩 활동하고 있는데 큰 사건이 터지면 한번에 동원되기도 한다. 이번 전남 강진 현장에도 군견 2마리와 체취견 8마리가 투입됐다. 체취증거견은 사람 냄새를 맡도록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후 도주한 범인 추적뿐 아니라 실종자나 치매 환자 수색, 범죄 피해자 시신 추적 등에 투입된다.
체취증거견이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건 아니다. 송성준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 경감은 체취증거견이 도입된 첫 해인 2012년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핸들러(지도수)와 체취증거견들의 경험과 훈련이 쌓이면서 이제는 각종 현장에서 지원 요청이 올 정도다. ‘나로’뿐 아니라 모든 체취증거견들의 능력은 출중하다는 게 송 경감의 설명.
그럼에도 에이스인 나로의 특징이 따로 있진 않을까. 핸들러 김영기 경사는 나로의 강점으로 ‘활동성’을 꼽았다. 길이 없는 비탈길이나 야산을 다녀야 하는 체취증거견에게 가장 필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 아홉 살이 된 나로는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예전보단 빨리 지친다. 에너지는 한창 때보다 떨어졌을 진 몰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경험이다. 김 경사와 나로는 지금까지 150회 이상 각종 사건에서 활약해 왔다. 이번 강진 야산에서도 다른 군견과 체취증거견들도 냄새에 반응을 보였지만 시신이 있던 현장 방향을 제일 잘 찾은 게 나로였다. 나로의 생명력과 의지를 보여준 사건도 있었다. 수년 전 야산에서 수색 도중 독사에게 물려 생사를 오가며 관계자들의 애를 태웠는데 다행히도 극복해 냈다.
나로는 올해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렇게 되면 과학수사대 소속으로서는 첫 은퇴견이 된다. 나로의 뒤는 ‘시나로’라는 체취증거견이 이어받기 위해 훈련에 한창이라고 한다. 뛰어난 후각으로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힘써준 나로가 은퇴 이후엔 사랑 받는 반려견으로 살아가길. 그리고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힘쓰는 모든 사역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