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지역에 정착한 ‘노인의 친구’
관심사 잘 맞는 노인-청년층
1대 1로 지속적 관계 맺게 도와
함께 책을 읽고 종일 감상평을 나눈다. 주말이면 벼룩시장을 열고 함께 소풍을 떠난다. 연인이나 또래 친구들과의 만남이 아니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국제협회 ‘노인의 친구(FAM)’에서는 노인과 젊은이들이 이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일이 흔하다.
FAM은 1946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국제 노인단체 ‘빈곤층의 형제들(Petit frères des Pauvres)’의 독일 지사다. 외로운 노인들의 고립감을 줄여주기 위해 이웃들을 연결해주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지역사회 곳곳에 위치한 사무실은 노인들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거점이 된다. 이곳을 찾는 노인들은 주말이면 젊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근교 여행, 벼룩시장 등 이벤트에 참여한다. 특히 FAM의 주된 활동 중 하나인 ‘방문 파트너십’은 지역 사회 젊은이들과 노인을 1대 1로 짝지어 정기적인 방문 교류를 하게 함으로써 서로 친구가 되어 주게 한다. 대학 진학이나 취업 등으로 낯선 지역으로 이사 온 젊은이들은 가족에 대한 향수를 해결할 수 있고, 노인들은 젊은 세대와의 대화를 통해 활력을 되찾을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독일에는 1991년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에 6개 지사를 두고 있다.
지난달 15일 베를린 베딩 지역의 FAM 사무실에서 만난 매니저 에이튼 카우프만씨는 “우리가 아무 청년이나 노인을 무작정 연결해주지는 않는다”라며 “관심사가 잘 맞는 사람들끼리 이어줘야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베딩으로 대학 진학을 위해 온 19세 청년은 FAM을 통해 만난 97세 할아버지와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문학을 전공하는 청년은 역시 문학을 공부했던 할아버지와 주 1~2회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카우프만씨는 “역사에 해박한 할아버지가 경험을 담아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단순 봉사활동이 아니라 상호간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정기적으로 찾는 노인(평균 80세)은 80여명이며, 이렇게 매칭된 20~40대 젊은 자원봉사자들은 베딩 지사에만 100여명에 달한다.
이곳 노인들은 분노할 틈과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젊은이들과 여가 시간을 공유하고 대화로 가까워지는 사이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크리스텔 기테(84)씨는 “세대 간 생활 방식과 가치관의 차이는 과거에도 그리고 전세계 어디에도 존재한다”라며 “독일 젊은이들도 미래에 줄어들 복지혜택에 대해 두려워하는 등 기성세대와 보이지 않는 갈등을 분명히 겪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처럼 대화할 때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토론하고, 서로 다양한 취미를 함께 즐기게 되면 싸울 일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라며 “우리가 기성세대와 겪었던 갈등은 이제 풀어나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베를린(독일)=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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