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합참 아닌 기무사의 문건 작성은
육사 라인의 고의적 계획 해석
민간 영역에 개입한 점도 심각
#2
과거 국정원이 잡은 간첩 대부분
기무사의 증거 확보 과정 거쳐
민간인 사찰 사이서 위험한 줄타기
#3
5ㆍ16 땐 모든 국민이 몰랐지만
요즘은 군 이동 등 실시간 SNS에
군사정변 도모하기는 어려울 듯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집회 당시 국군 기무사령부가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것과 관련해 독립수사단을 꾸려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전격 지시했다. 이번 사건에 전ㆍ현직 국방부 인사들이 광범위하게 관련됐을 개연성이 있고 기존 국방부 검찰단 수사가 의혹을 해소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기무사가 실제로 평화적인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을 폭도로 간주하고 계엄령까지 검토했다면 쿠데타와 같은 헌정파괴에 이르는 국기문란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시민 중에서도 자신을 폭도로 규정한 기무사의 문건에 분노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마치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황당한 국면이다. 당장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기무사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배후세력을 밝혀낼 것을 일제히 주문하고 있다. 기무사 사태에 대한 주요 논점을 체크하기 위해 국방부 취재팀과 청와대팀, 국회팀이 카톡방에 모였다.
광화문 불나방(불나방)=문건에는 ‘서울시내에 군병력 탱크 200대와 장갑차 550대, 무장병력 4,800명, 특전사 1,400명을 투입해 계엄령을 시행한다’는 식으로 병력과 무력 동원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는데요.
올해도 가을야구(가야)=구체적인 게 당연하죠.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시나리오가 아니에요. 표현이 좀 이상할 수 있지만 어찌됐든 병력을 동원하면 군사작전인데, 현장 지휘관의 재량에 맡긴다는 건 더 허술한 일입니다.
사이다 말고 탄산수=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를 느낍니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촛불집회에 참여한 국민이 폭도로 돌변해 무기고를 탈취한다는 등의 상당히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해 계엄령을 준비했던데 탄핵이 가결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당탐구생활(탐구생활)=문건 자체는 상황을 대비하겠다는 가설적 성격이었죠. 만약 실행됐다면요? 군이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수많은 희상자를 낸 5ㆍ18 민주화운동 트라우마가 떠오를 수밖에 없죠.
불나방=문건 작성 주체가 부대 이동 등 군령권을 갖는 합동참모본부가 아니라 보안ㆍ방첩부대인 기무사라는 사실에 적지 않은 국민이 의구심이 있는데.
가야=그래서 기무사가 정치개입으로 욕을 먹고 있어요. 정식라인이 아니라 마치 비선을 통해 계획을 짠 것처럼 비치는 것도 문제입니다. 당시 합참의장이 군의 주류인 육사가 아닌 3사 출신이기 때문에, 장관-육군총장-기무사령관으로 연결되는 육사 라인에서 고의로 제쳤다는 해석도 나오지만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기무사가 본연의 업무범위를 벗어나 민간영역에 개입했다는 점이죠.
불나방=문 대통령은 왜 순방 중에 수사지시를 했나요.
달빛 사냥꾼(달빛)=문 대통령 취임 후 해외순방지에서 특별지시를 내린 것은 처음입니다. 그만큼 사안이 위중하고 심각하다고 판단한 거죠. 9일 청와대 비서진 현안점검회의를 거쳐 보고를 올렸고, 그날 저녁 대통령이 인도에서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청와대는 10일 지시 사실을 공개하며 “순방을 마친 뒤 돌아와 지시하는 것은 너무 시간이 지체된다고 대통령이 판단한 듯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불나방=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왜 계엄령 문건을 보고받은 뒤 몇 달 동안 뭉갰나요.
삼각지 미식가(미식가)=뭉갠 것이 아니라 뭉개진 것에 가까워 보입니다. 뭉갰다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것인데, 당시 국방부도 해당 문건을 두고 위법성 검토를 했습니다. 또 청와대에 보고도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국방부가 문건 존재를 뭉갠 것이 아니라, 국방부 자체적인 문건 검토와 청와대에 대한 보고 과정 어디쯤에서 뭉개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문건 보고가 3월에 이뤄졌고, 3월은 남북 정상회담 준비가 한창이었을 때입니다. 청와대가 기무 문건에 큰 관심을 갖기 어려웠던 상황 아니었을까요.
가야=파급력이 큰 카드를 미리 꺼내 들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이른바 조커죠. 언제든 꺼내도 지지층이 결집하며 환영하고, 상대는 궁지로 몰아가는 그런 카드에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이라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아껴뒀을 수도 있죠. 어떤 경우이건 청와대와 긴밀한 사전조율이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보는 게 상식이죠. 문제는 이와 비슷한 카드가 여럿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문건 공개는 애피타이저에 불과할 수도 있어요.
불나방=송 장관이 기무사 관련 보고를 청와대에 보고 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약간 시각 차가 있는 것 같은데.
달빛=송 장관이 3월 문건 존재 사실을 기무사령관에게 보고 받았지만, 곧바로 청와대에 보고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청와대는 송 장관이 기무사 개혁이라는 큰 틀 속에서 계엄령 문건도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라인을 통해 보고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또 탱크나 병력 동원계획 등 계엄령 문건 내용을 세세하게 설명했던 것은 아니라 이번에 공개된 내용을 확인한 청와대의 충격이 컸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불나방=기무사의 실태는 어떤가요. 임무가 무엇이죠.
가야=촛불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그야말로 망신창이가 됐죠. 지난해 자구책으로 개혁안을 공개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어요. 방첩과 군사보안이 기무사의 주 업무입니다. 하지만 업무의 경계가 모호해요. 회색지대도 많고요. 과거 국정원이 잡아들이던 간첩 대부분은 기무사의 사전 조사와 증거확보를 거쳐 국정원으로 넘긴 것이죠. 가령, 기무사가 간첩 용의자를 확정해 정보를 국정원에 넘겼다고 해보죠. 이 사람이 간첩인지 알려면 오랜 기간 미행하고, 도감청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탐문해야 해요. 간첩으로 드러나면 그나마 낫지만 만약 아니라면 어쩔 건가요. 바로 민간인 사찰이 되죠. 이처럼 기무사의 업무는 항상 위험한 줄타기에요.
불나방=문제의 문건이 왜 민주당 이철희 의원을 통해 공개됐나요.
탐구생활=국방위 간사로 지난 국감에서도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활동을 밝혀내며 초선 중 최고 활약을 보여줬죠. 이 의원은 이번 문건 폭로 직후에 당 대표에게 칭찬과 격려 전화도 받았다고 하죠. 항간에는 송 장관이 지난 3월 이미 해당 문건을 보고받고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 이 의원에 문건을 넘기고 민주당에서 의혹을 키운 게 아니냐는 말도 돌았어요.
불나방=군의 정치적 중립 문제가 불거진 것은 꽤 오랜만이죠. 아직도 군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나요.
미식가=5ㆍ16 정변이 가능했던 것은 군 핵심세력 간 모의가 기습적으로 은밀하게 진행됐기 때문이죠. 당시 모든 국민과 대부분의 군인들은 쿠데타 진행 사실도 몰랐습니다. 만약 지금 특정 세력이 정권 탈취에 성공하려면 합참과 국방부 청와대를 동시에 무력화해야 하는데, 군인들이 이동하는 순간부터 인터넷과 각종 SNS에 이 모습이 올라올 겁니다. 한국일보 국방부 출입기자도 병력이 움직이고 있다고 속보를 쓰겠죠. 삽시간에 이 같은 동향이 전세계에서 공유될 겁니다. 군사정변을 도모하기에는 너무나 발전된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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