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동행한 NYT 기자
1박 2일 방북 경험담 전해
“북한땅에 내렸을 때부터 투명인간이 됐다. 텅 빈 공항에서 평양 시내로 들어오는 도로에는 미국 대표단의 차량 행렬밖에 없었지만, 주변 밭에서 일하는 근로자나 행인 등 누구도 놀란 기색은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동행해 지난 6,7일 북한을 방문한 뉴욕타임스의 가디너 해리스 기자의 평양 관찰기다. 그는 12일(현지시간) 게재한 방북기에서 “북한에서 서방 기자들은 존재해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취급 당한다”고 요약했다.
해리스 기자에 따르면 평양 시내를 관광할 때도 북한사람들의 ‘의도적 무관심’은 지속됐다. 한껏 차려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평양 시민들은 각자 분주하게 움직이기 바빴고, 유일하게 어린 아이들만이 기자단 일행을 빤히 쳐다보며 아는 척을 했다.
그러나 이는 방치가 아닌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또 다른 형태의 감시였다. 해리스 기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 부근 조깅에 나섰다가 소총과 총검을 소지한 군인들을 맞닥뜨렸다. 이들은 호수 주변 산책로에 줄지어 서 있었는데, 잔뜩 긴장하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두 바퀴째 돌 무렵에 병사 2명이 갑자기 관목 숲 사이로 몸을 숨기며 사라졌고, 그가 외부와 연결된 출구 쪽으로 향하자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며 제지했다. 또 다른 방북 동행기자인 블룸버그 통신의 니컬러스 워드험 기자도 숙소 주변에서 여유롭게 산책할 수는 있었지만 감시원들이 나무 뒤에 숨어 취재진을 지켜봤다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프랭크 자누치 미국 맨스필드 재단 소장은 이에 대해“북한 사람들이 비정상인 게 아니라 시스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성윤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한국학 석좌교수는 “북한 당국의 세뇌 때문일 것”이라며 “백화원 영빈관에서의 일은 당국의 명령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방북 일정은 깜깜이 그 자체였다. 보통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의 해외 순방 일정은 분 단위로 계획됐지만, 이번 방북 기간 미국 외교관들은 숙소와 통신 방법, 심지어 여권에 어떤 도장이 찍힐지조차 몰라 불안해 했다고 해리스 기자는 전했다.
미국 인사들도 나름의 대비책을 마련했다. 한 외교관은 기자들에게 비행기 착륙 직전 휴대기기의 전원을 꺼두라고 조언했다. 감청으로 인해 북한을 떠난 뒤 기기 이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무부 관계자들은 회의장 밖을 돌아다닐 때도 북측 인사들이 입술 모양을 읽어 내지 못하도록 입을 가리고 대화를 나누는 등 보안에 최대한 신경을 썼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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