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릿수 턱걸이 인상률
“소상공인들 숨통만 조이나”
사용자측, 불복종 움직임까지
“실질 인상률 2~3% 수준 그쳐
2020년 1만원 공약 물거품되고
실직 불안감 여전” 노동계 반발
“자녀를 둔 입장에서 최저임금이 차츰 올라야 한다는 데는 동의해요. 그래도 정책 시행 순서가 잘못된 거 아닌가요? 임대료나 가맹비 구조는 그대로 두고 소상공인 숨통만 조이면 어떻게 살란 말인가요.” (서울 송파구 50대 여성 편의점주 이모씨)
“그동안 물가만 올랐지 시급은 찔끔찔끔 ‘개미 눈물’만큼 올라서 커피 한잔 값도 안 된다고 비판받지 않았나요? 한 시간 일해서 밥 한끼 못 먹는 게 말이 안 되죠. 이제라도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보지만 기대에는 못 미치네요.” (홍대입구 앞 카페 20대 아르바이트생 김유나씨)
공약의 굴레가 너무 강했던 걸까. 구조적인 대책 마련에 손을 놓은 탓일까.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14일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5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해(7,530원)보다 10.9% 인상한 8,350원으로 의결한 것을 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소상공인을 비롯한 경영계는 “이러다간 다 죽는다”며 ‘불복종’의 움직임을 본격화할 태세고,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 근로자들을 비롯한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을 환영하면서도 사실상 물 건너간 ‘2020년 1만원 최저임금’에 대한 실망감과 자칫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희비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두 자릿수에 턱걸이를 한 이번 인상률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거센 반발과,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의 이행을 촉구하는 노동계 사이에서 갈등했던 정부와 공익위원들의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최저임금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이라는 상징적 의미는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정부 안팎에서 요구가 터져 나오는 소득주도 성장의 ‘속도조절론’도 일부 수용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실현이 어려워졌으며,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줄타기의 결과’라는 박한 평가도 나온다.
편의점 업주 등을 포함한 소상공인들은 집단 저항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국 350만 소상공인의 대표 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최근 2년 사이 최저임금이 30% 가까이 올랐는데, 같은 기간 수입이 그만큼 늘어난 소상공인이 얼마나 되겠냐"며 "최저임금 지급 거부 운동은 존폐 기로에 몰린 소상공인들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거리로 내몰리는 업주들도 점점 늘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서 올해로 12년째 분식집을 운영하는 이모(58)씨는 “갈수록 커지는 임금 부담에 작년 상반기부터 아예 혼자 일을 하고 있다”며 “차라리 가게를 접고 남의 가게에서 일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 가게를 내놨지만, 반 년이 넘도록 나가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장사를 한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올해는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에도 불구하고 아직 뚜렷한 지원 대책이 나오지 않아 소상공인들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 제도 자체나 근로기준법을 손보자는 급진적인 불만의 목소리마저 나온다. 서울 강남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강모(54)씨는 "주휴(週休)수당을 안 주는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 낮다고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주휴수당을 폐지한다면 시급 8,000원대 최저 임금도 큰 무리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조적 해법을 외면한 정부를 원망하는 목소리도 많다. 송파구 편의점주 이모씨는 “치솟는 임대료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가맹비 구조를 먼저 개선한 뒤 최저임금에 손을 댔어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저임금 인상의 최대 수혜자인 아르바이트생들은 두 자릿수 인상을 반긴다. 대학생 김근현(21)씨는 “최저임금은 노동에 대한 최소한 받을 수 있는 정당한 대가인데, 이게 오른다는 건 당연히 기뻐할 일”이라고 했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박모(29)씨도 “특히 시간제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시급 몇백원 더 받는 게 엄청난 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계가 모두 반기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지난 5월 국회에서 근로자에게 불리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결정을 내리고도, 이에 따른 임금 감소분을 내년도 최저임금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아 실제 임금 인상분은 박근혜 정부 시절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게 노동계의 비판이다. 산입범위 확대를 감안하면 실질 인상률은 2~3% 수준에 그친다는 주장이다.
저임금 근로자들의 해고 불안감도 동시에 커졌다.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1년째 일하고 있는 정모(27)씨는 “올해 1월에도 사장님이 직원 한 명을 내보내고 본인이 직접 오전 근무를 하고 있는데 내년 최저임금이 부담스러우면 오후 근무마저도 사장님이 나설 거라고 한다”며 “숙련된 직원이 대신 일해주면 사장님 입장에서 편할 수 있겠지만, 이런 가게에서는 운영이 힘들어지면 가장 먼저 줄이고 싶은 게 직원 인건비 아니겠냐”고 한숨 지었다. ‘최저임금 유목민’도 생기고 있다. 서울 성동구 한 PC방에서 6개월째 일하고 있는 이유민(21)씨는 “올해 최저임금 많이 오르면서 기존에 일하던 집 근처 편의점에서 나가달라 해 최저임금을 보장해주는, 집에서 40분 거리인 이 곳 PC방까지 오게 됐다”며 “지금 일하는 곳에서도 내년 최저임금이 부담스럽다고 하면 또 다른 최저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찾아 나설 것”이라고 했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은 풀어야 할 숙제도 잔뜩 남겼다. 일단 최저임금 결정 방식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저임금이 매년 정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부터 손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익위원들은 내년도 인상률 10.9%의 산출 근거로 ▦유사근로자 임금 인상 전망치 3.8%포인트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따른 보전분 1%포인트 ▦협상배려분 1.2%포인트 ▦소득분배 개선분 4.9%포인트라고 밝혔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협상 배려분 등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숫자인지 알 수 없다”면서 “정치적인 결정을 먼저 내린 뒤 사후적으로 숫자를 맞춰 넣은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현재와 같은 최저임금 결정 방식은 비생산적이며 사회적 비용이 과도하다”면서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정치적인 이슈화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게 될 영세상공인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소상공인의 카드수수료율 차별 등을 가장 먼저 시정하고, 임대차보호법 개정, 프랜차이즈 본사 갑질 방지 등을 보다 내실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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