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등 월드컵 4강 오른 팀들
철벽수비 후 초스피드 공격 전환
유럽 프로무대 공식 그대로 반영
볼 점유율 상위 팀들 성적 초라
수비 뚫는 세트피스도 정교해져
‘축구 전술은 생물과 같다’는 말이 있다. 공격 축구가 득세하면 이를 막기 위한 수비 전술이 나오고, 수비가 단단해지면 그 벽을 깰 또 다른 공격 전술이 등장한다. 이렇게 전술은 서로 물고 물리며 환경에 따라 진화를 거듭한다는 뜻이다.
프랑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18 러시아월드컵의 두드러진 키워드 중 하나는 공수 전환의 ‘속도’였다. 이 역시 최근 수비 축구가 맹위를 떨친 것과 연관이 깊다. 상대가 철벽 수비를 구축하기 전에 재빨리 공략하겠다는 의도가 전술로 구현된 것이다.
‘우리가 볼을 가졌을 때’ ‘우리가 볼을 가졌다가 뺏겼을 때’ ‘우리에게 볼이 없을 때’ ‘우리에게 볼이 없다가 빼앗았을 때’ 등 4가지 과정이 끊임없이 순환되는 게 축구다.
‘우리가 볼을 가졌을 때’를 극대화한 전술이 한때 세계 축구를 주름잡았던 점유율 축구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우승 팀 스페인이나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의 표본인 FC바르셀로나(스페인)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러시아월드컵에서 전체 점유율 1위, 3위였던 스페인(68.8%)과 아르헨티나(64.0%)는 16강에서 탈락했고 2위 독일(67.3%)은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했다.
반면 프랑스는 전체 점유율은 13위(51.9%)에 그쳤지만 번개 같은 공수 전환을 바탕으로 정상에 올랐다. 미드필더 폴 포그바(25)가 정확한 중거리 패스를 연결하고 이를 발 빠른 음바페(20)가 단숨에 해결하는 패턴은 단순하지만 상대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안겼다. 프랑스 외에 크로아티아(55.1%ㆍ점유율 순위 8위), 벨기에(52.6%ㆍ11위), 잉글랜드(54.2%ㆍ9위) 등 4강에 든 팀들 모두 점유율은 높지 않아도 공수 전환에 능수능란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과거에는 월드컵이 혁신적인 전술이 등장하는 무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의 우수 선수들이 유럽에 모여 수준 높은 경기를 1년 내내 펼친다. 이제는 클럽 축구의 트렌드가 월드컵에서 반영된다고 보는 게 맞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수비를 하다가 공격으로 올라가는 속도, 반대로 공격하다가 내려와서 수비를 갖추는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지난 수년간 프로 리그에서 이미 증명이 됐고 이번 월드컵에서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트피스의 득세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러시아월드컵에서는 세트피스로 69골이 나와 역대 최다(종전 기록은 1998년 62득점)였다. 세트피스 득점 비율도 43%로 역대 최고(종전 기록은 1994년 월드컵 38%)다. 갈수록 수비가 견고해지는 추세에서 프리킥이나 코너킥은 힘을 덜 들이고 득점할 수 있는 효율적인 루트다. 그래서 킥은 더욱 정교해지고 세트피스 전술도 다채로워지고 있다. 세트피스 때 공격에 가담해 한 방씩 터뜨려주는 이른바 ‘수트라이커’(수비수+스트라이커)의 비중도 점차 높아진다. 이번 대회에서 3골이나 기록한 예리 미나(24ㆍ콜롬비아), 2골씩 넣은 안드레아스 그랑크비스트(33ㆍ스웨덴), 존 스톤스(24ㆍ잉글랜드) 등이 대표적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축구는 여전히 ‘공수 전환 속도’가 느리고 ‘세트피스’도 신통치 않다. 볼을 빼앗더라도 빠른 역습을 전개하지 못해 늘 답답함을 안긴다. 힘들게 볼을 뺏어놓고 곧바로 다시 뺏기는 경우도 많다. 세트피스 역시 이번 대회에서 위협적인 장면은 거의 없었다. 독일전 김영권(28)의 결승골이 유일했다. 한 전문가는 “한국이 러시아월드컵에서 부진했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현대 축구의 최신 트렌드에 발맞추지 못했다는 것 하나는 분명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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