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 친구의 신혼집에 다녀왔습니다. 일 년 반 전 겨울, 결혼을 앞두고 오래된 아파트에 전세를 얻었다며 도와달라는 부탁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던 이후로 첫 방문이었습니다. 지난봄 유리컵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 아보카도 씨앗을 화분에 심고, 얇은 종이로 조심조심 포장해서 서울 숲 근처의 이십 년이 훌쩍 넘은 복도식 아파트를 찾아갔습니다. 건물은 말끔하게 새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었는데 일 년 반 전에 보았던 복도의 초록색 창틀만은 그대로였습니다.
5층에 위치한 집으로 올라가서 현관문을 열자 디자이너와 마케터인 친구 부부와 꼭 닮은 공간이 나타납니다. 회색의 도장 바닥, 상부장을 떼어낸 주방, 벽지를 제거하다가 조적 벽이 드러난 것을 그대로 하얗게 페인팅한 침실의 벽, 텔레비전 대신 프로젝터를 설치한 커다란 테이블이 놓인 거실. 공사를 하던 겨울날의 기억들이 지금 집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그때 저는 ‘너희 집처럼 바닥을 하고 싶다’ 하던 친구에게 장판을 모두 걷어내고 수성 에폭시를 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더랬습니다.
정형화된 집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그러나 꽤 근사하게 가꾸어진 친구의 집을 둘러보다가 1990년대에 시공된 누런 인터폰이 그대로 달려 있는 것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 위쪽으로는 불투명 유리에 금장 장식을 한 벽조명이 달려 있었고요. 기억을 더듬어보니 친구를 따라 처음 그 집을 보러 갔던 날 낡고 촌스러운 벽지와 장판 사이에서 반짝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내던 벽조명이 떠오릅니다. 요즘 잘 나오지 않는 빈티지한 디자인이라며 그대로 살리자던 그 날의 대화도요. 그리고 바로 그 아래에, 잊고 있던 인터폰이 있었던 거죠. 떼어버리려다가 그냥 뒀다는 친구에게 “우와, 이거 정말 멋지다”라고 말했습니다. 친구 부부도 “응. 그렇지?” 하며 웃습니다. 최근에 공사한 십여 년 된 아파트의 ‘하얗고 깨끗하지만 반드시 가려두고 싶은’ 인터폰이 떠오릅니다.
집에 돌아오며 문득, 요즘에는 찾아볼 수 없는 1990년대의 클래식한 디자인의 인터폰과 벽등들이 ‘리모델링’이라는 명목 하에 얼마나 많이 사라졌을까 생각했습니다. 저와 친구들처럼 누렇게 바랜 인터폰과 자칫하면 구식으로 느껴질지 모를 벽등이 취향에 맞는 사람도 가끔은 있었을 텐데 말이죠. 무늬가 멋진 방범창이나 멋진 나무 문양의 천장, 오래된 스위치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간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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