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국면서 67쪽 분량 ‘대비 계획’
전국 주요시설 494곳 계엄군 투입
야당 국회의원 체포 방안도 수립
언론사에 통제요원 파견, 검열 계획
靑 “특수단, 실행계획 여부 등 수사를”
국군 기무사령부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 탱크를 투입하고 언론을 검열하며 야당 국회의원을 체포하는 등 구체적 계엄령 실행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1979년 10ㆍ26사태나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령 선포 당시를 참조해 국민에 공포할 ‘계엄 포고문’까지 미리 작성됐으며, 언론에 파견할 통제요원 수까지 치밀하게 정해놨다. 기무사가 쿠데타를 방불케하는 헌정파괴 계획을 세운 것이어서 파장이 확산될 전망이다. 또 문건이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특별수사단의 수사가 초미의 주목대상으로 떠올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박근혜 정부 기무사가 작성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에 딸린 ‘대비계획 세부자료’가 어제 국방부를 통해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민정수석실에 제출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2급 군사기밀로 지정된 ‘대비계획’은 총 67페이지 분량이다. 단계별 대응계획, 위수령, 계엄선포, 계엄시행 4대 주제아래 21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21개 항목에는 비상계엄 선포문, 보도매체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통제 방안, 국회에 의한 계엄해체 시도 경우 조치 사안 등이 담겼다.
이와 관련 기무사 의혹 특별수사단은 수사개시 첫날인 지난 16일 가장 중요한 수사단서인 USB를 확보했으며 이를 통해 문건 및 세부자료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이날 밝혔다. 특수단은 “해당문건 작성 TF팀 참여자 명단을 입수해 소환조사를 시작함으로써 작성경위, 지시경로 등에 관한 의미있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전국 주요시설 494곳과 촛불집회가 열렸던 광화문 및 여의도에 기계화 사단 기갑여단, 특전사로 편성된 계엄임무 수행군을 전차와 장갑차를 이용해 신속하게 투입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에서 2년마다 합법적으로 작성하는 통상의 계엄 매뉴얼과 달리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서열 2위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추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관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어서 통제가 쉬운 ‘육사 계엄군’ 편성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계엄령이 국회 표결로 해제되지 않도록 국회를 식물화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여당(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표결 불참 방안이 대표적이다. 또 계엄사령부가 먼저 집회ㆍ시위 금지 및 반정부 금지활동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 시 구속수사 등 엄정 처리하겠다고 발표하는 계획이 마련됐다. 계엄에 반발하는 야당(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집중 사법처리해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하겠다는 꼼수다.
언론 통제를 위해 KBSㆍYTN 등 22개 방송, 연합뉴스 등 34개 주요 언론사에 통제요원을 파견하고 보도를 검열하는 계획도 수립됐다. 인터넷 포털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차단, 유언비어 유포 통제 등의 방안도 세웠다. 계엄선포와 동시에 발표될 ‘언론, 출판, 공연, 전시물에 대한 사전검열 공고문’ 및 ‘언론사별 계엄사 요원 파견 계획’ 등의 문건도 작성돼 있었다. 대통령이 국정원장에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하고,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하는 국정원 통제계획도 포함됐다.
김 대변인은 “(계엄군이) 신속하게 계엄을 선포하고 주요 ‘길목’을 장악하는 등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게 계엄 성공의 관건이라고 적시돼 있다”며 “청와대는 문건의 위법성과 실행계획 여부, 배포 단위에 대해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법과 원칙 따라 수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보수 야당은 청와대가 문건을 정략적으로 활용한다고 반발했다.
정지용 기자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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