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기대 식을수록 북한에 더 손해
金 오판하면 한반도와 전세계 재앙 초래
‘과거의 미몽’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현명
미ㆍ중 통상전쟁이 시작됐다. 이 ‘총성 없는 전쟁’의 한 복판에 북한 비핵화의 민낯과 속살도 드러나고 있다. 7월초 세 번째 북한을 찾은 폼페이오와 김영철의 미ㆍ북 고위급 회담이 그 첫 담판이었다. 얼핏 보면 위 두 힘겨루기가 서로 따로따로 노는 것 같다. 하지만, 통상전쟁과 비핵화 협상이 서로 얽히고 묶여 있다.
중국은 그 동안 북한 핵개발을 핵 확산 금지라는 국제안보, 특히 동북아 평화 협력차원의 대의보다는 국가 군사력 증강, 지역 패권 확장 차원에서 접근했다. 지난해 말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을 포함, 트럼프 정부의 강한 압박에 중국이 유엔제재 대열에 합류했지만, 통상전쟁이 벌어지자 또다시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도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천명했던 것과는 달리, 아직은 이래저래 하는 척 찔름찔름 시늉만 내며 딴전을 부리는 모양새다. 물론 북한만이 일방적으로 양보할 수는 없다. 줄 것은 주고, 취할 것은 취하는 게 협상의 기본이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식어가면 누가 손해를 보는가를 한번 따져보자.
좀 깊이 들여다보면, 미ㆍ중 통상전쟁과 북ㆍ미 비핵화 협상의 기 싸움은 세계 경제ㆍ통상 군사안보 틀(WTO, NATO 등)의 근본적 변신이라는 더 큰 흐름의 극히 일부가 드러난 외피일 수 있다. 지금 4차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 속에서, 1970년대 말 개혁개방으로 거침없이 굴기해온 중국이 미국의 기존 패권에 도전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레이엄 앨리슨이 저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지난 500 년 동안 세계는 신흥세력과 지배세력의 패권다툼을 열 여섯 차례나 겪었다고 밝힌다. 그 가운데 네 번만 평화적으로 마무리 짓고, 열두 번은 전쟁의 참상을 막지 못했다고. 김정은의 심사숙고와 대범한 결단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그의 잘못된 계산이나 선택이 미ㆍ중 패권 다툼에 불쏘시개 역할을 해서 작게는 한반도, 크게는 전 세계에 대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첫째, 누누이 강조했듯이 북한이 낡은 ‘과거의 덫’에서 빨리 뛰쳐나올수록 새 길도 더 빠르게 열린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조국통일문제는 폭력혁명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로동신문, 1975년 10월 1일자)라고 했다. 지금 그 ‘폭력수단’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핵무기까지 사실상 확보한 마당에, 이를 포기하기란 태산을 허무는 것처럼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집착할수록 북한은 고립과 질곡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둘째, 푼돈에 매달리다 천만금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선전용 막말과 지연, 협박, 위약을 일삼는 케케묵은 협상방식은 이제 겨우 생기기 시작한 대북 신뢰만을 무너뜨릴 뿐이다. 얇게 썰어서 먹는 ‘살라미’ 전술도 시간만 허비하고 통 크게 얻는 기회를 잃게 할 것이다.
셋째,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빠를수록 북한에 이롭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군사ㆍ경제 최강국이다. 미국과의 우호관계 없는 북한의 번영은 어렵다. 중국의 오늘의 굴기, 베트남의 급속 경제성장도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그 효시 아닌가? 더구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북한, 나아가 한반도 안위에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끝으로, 북한이 미국의 국내 정치에 너무 민감할 필요가 없다. 2016년 미 대선에서의 러시아 개입 의혹을 파헤치는 특검 결과를 보고 움직이려 한다든지,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결과까지 지켜보고 대미 협상을 하겠다는 것은 하책이다. 미국의 트럼프이지, 트럼프의 미국이 아니지 않는가? 지금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접근은 초당적이다. 유엔을 포함, 국제사회도 함께 가고 있다. 북한이 ‘과거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작은 이익에 매달려 시간을 끈다면, 미국과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외면과 불신만을 더욱 굳힐 뿐이다. 한마디로, 주판만 튀기다가 이 희귀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직하게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양성철 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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