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가려운 곳 시원하게 긁어줘
“50년간 한 판서 구워… 삼겹살 판 갈아야”
“사이 안 좋아도 외계인 침공땐 힘 합쳐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특유의 입담으로 대중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줘 시선을 독차지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뒤 쏟아낸 촌철살인의 발언들은 지금도 흔히 회자될 정도다.
노 원내대표를 대중에 처음 각인시킨 것은 TV토론에서의 발언이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그는 한 방송사 토론회에서 당시 다른 야당들을 향해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새까맣게 됐으니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며 소위 ‘삼겹살 판갈이론’을 제시해 일약 유명세를 탔다. 그만큼 대중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한 기성정치인이 없었다는 얘기다.
17대 국회 입성 뒤 법제사법위 첫 국정감사에서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1만명만 평등한 것 아닌가”라고 평소의 소신대로 사법부를 질타해 입심을 과시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출연한 한 TV토론회에서는 야권연대를 비판하는 당시 여당 의원의 발언에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반격해 화제가 됐다.
그의 발언은 20대 국회 들어 정의당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2016년 11월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긴급현안질의 때는 경기고 동기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관련 상황에 대해 “속단하지 말라”고 하자, “지단(遲斷)이다”고 응수한 것은 동영상으로 온라인상에서 아직 회자된다.
지난해 7월에는 대선 당시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당 지도부가 이유미씨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리자, “콜레라균을 이유미가 단독으로 만들었건 합작으로 만들었건 국민의당 분무기로 뿌린 거 아닌가. 여름에 냉면집 주인이 ‘나는 대장균에 속았다’고 얘기하는 격”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역시 지난해 9월에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동네에 파출소 생긴다니까 동네 폭력배들, 우범자들이 싫어하는 것이나 똑 같은 거죠”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노 원내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달변의 이유를 묻자 “진보정치를 하다 보니까 마이크도 적게 오고 또 저희 주장이 사변적인 측면이 많아서 쉽게 설명하지 않으면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토로했다. 한국의 척박한 진보정치 현실에 나름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화려했던 촌철살인의 정치인, 노회찬 어록은 이제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없게 됐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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