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없는 하늘서 조종 짜릿한 손맛”
마니아 넘어 취미 인구 크게 늘어
최대 커뮤니티 회원 2년새 2배
‘드론계 김연아’ 레이싱 김민찬 선수
세계랭킹 1위 넘사벽 인기몰이
농업ㆍ재난구조 등 새 시장도 쑥쑥
#. 여름 해가 미처 다 뜨기도 전인 지난 14일 오전 6시.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중랑천 인근 풀숲에서 무언가 ‘위이이잉‘ 소리를 내는가 하더니 순식간에 하늘로 쌩 날아갔다. 카메라 영상을 수신하는 ‘FPV(1인칭시점) 고글’을 빌려 쓰자 마치 직접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에 시원함을 넘어 어지러움까지 느껴졌다. 하늘에서 묘기도 부리고, 전혀 다른 각도의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이 비행체들은, 레이싱부터 촬영, 배달까지 못하는 일이 없는 ‘드론’이다.
이날 드론을 들고 장암동에 모인 10여명은 “학원 스트레스를 날리러 왔다”는 초등학생부터 “나 대신 사방팔방 날아주는 게 재미있다”는 50대 부부까지 다양했다. 손바닥보다 작은 ‘완구용 드론’, 200만원이 훌쩍 넘는 ‘촬영용 드론’, 직접 만든 ‘레이싱 드론’ 등 크기, 모양이 제각각이다. 주파수 간섭이 일어나지 않도록 차례를 지켜 드론을 날려야 하는 건 드론 비행장의 기본 매너. 서울에선 사실상 드론 비행이 금지돼 있어, 애플리케이션(레디투플라이)으로 비행가능 구역을 미리 살피는 노력도 필요하다. 2년째 매주 이곳에서 드론 비행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김종민(44)씨는 “최근엔 한 달에 3, 4명씩 신입 멤버가 생길 만큼 드론 인기가 높아지는 게 체감된다”고 전했다.
한동안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드론이 차츰 일상으로 내려 앉고 있다. 개발 초기 군사용으로 주로 사용되던 드론은 두뇌 역할을 하는 비행 컨트롤러(FC)가 소형화되면서 가격이 10만원대까지 낮아졌고, 이제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장난감’이 됐다. 올해 초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드론 쇼’는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드론 인기 상승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정확한 국내 드론 인구 통계는 없지만, 2016년 4만여명 수준이었던 국내 최대 드론 커뮤니티 ‘드론플레이’의 회원수는 2년 만에 10만여명으로 크게 늘었다.
드론으로 ‘하늘 나는 기분’ 느껴볼까
취미로 드론을 즐기는 사람들은 비행 목적이 사진ㆍ동영상 촬영이냐 아니냐에 따라 ‘촬영파’와 ‘레이싱파’로 나뉜다. 촬영용 드론으로는 주로 호버링(제자리 정지비행)이 쉬운 GPS 드론이 사용되는데, 최근에는 초고해상도의 ‘4K’급 카메라가 달린 제품들이 많이 출시돼 전문가급 영상 촬영도 쉬워졌다. 유튜브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풍경 영상을 보고 드론에 입문했다는 황승연(36)씨는 “지상에서는 찍기 힘든 아름다운 영상을 건져냈을 때의 짜릿함이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도 발달해, 촬영 대상을 정해놓으면 사람 대신 드론이 움직이는 대상을 따라다니며 촬영해 주기도 한다.
레이싱용 드론에도 카메라가 부착된다. FPV 고글과 연결해 하늘을 나는 기분을 대신 느끼기 위해서다. 정해진 길 없는 하늘에서 드론을 상하좌우로 조종하는 ‘손맛’도 매력이다. 취미로 무선조종(RC) 헬리콥터를 5년간 조종했던 장영근(54)씨가 1년 전 드론으로 갈아 탄 이유도 드론의 자유로움에 있었다. 장씨는 “앞으로만 가는 헬기와 다르게 드론은 앞 뒤 옆으로 내가 조종하는 대로 날아다닌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고 날렵한 레이싱 드론으로는 프리스타일 비행을 연습하기 좋다. 드론을 한번에 휙 뒤집는 ‘플립’, 공중제비 돌 듯 큰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파워 루프’, 중심을 설정하고 주위를 빙빙 도는 ‘오비트’ 등 다양한 기술을 쓴다. 이날 아버지와 함께 처음 장암동 비행 모임을 찾은 공건우(13)군은 손에 든 GPS 드론보다 다른 사람들의 레이싱 드론에 더 관심을 보였다. 공군은 “유튜브에서 레이싱 드론 비행 모습을 봤는데, 기술을 사용하며 빠르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도전해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서울 안에서는 한강드론공원 등 일부 지역을 빼면 사전승인 없이 드론을 날릴 수 있는 구역이 없다. 때문에 대부분의 서울 지역 동호회원들은 근교로 나간다. 또 드론은 서로 주파수 간섭이 일어나기 쉬워 동시에 여러 사람이 날리기 힘든데, 이 때문에 동호인 모임도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이민규(31)씨는 “드론을 날리고 싶을 때는 번개로 몇 명씩 모여서 인천이나 경기 안산시 등 비행금지구역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으로 나간다”며 “비행 가능 구역으로 표시되더라도 꼭 관할 기관에 전화를 해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로리그까지 넘본다, 드론 레이싱
레이싱 드론은 취미를 넘어 스포츠의 새 영역을 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스포츠로 드론 레이싱이 시작된 것은 2015년 12월 KT가 전국 동호인을 모아 드론 레이싱 대회를 열면서부터다. 생각보다 많은 선수가 출전하고 미디어에서 이슈가 되자 KT는 이듬해 ‘기가파이브’라는 드론팀을 창단했다. 이들은 그 해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1위를 차지하는 깜짝 실력을 보였다. 요즘은 매년 10~15번 가량 대회가 개최될 만큼 당당한 ‘에어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드론계의 김연아’로 불리는 김민찬(14) 선수도 드론 레이싱의 인기에 한 몫 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16년, 드론 조종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국내를 넘어 세계랭킹 1위까지 차지한 김 선수는 지금까지 전세계 드론 레이서들 사이에서 ‘넘을 수 없는 벽’이다. 3살 때부터 RC 헬리콥터를 날리던 손재주가 그대로 드론에 옮겨왔다. 김 선수를 후원하는 KT 관계자는 “김 선수가 유명해진 이후로 드론 레이싱 대회에 초등학생 선수들이 급격하게 늘었다”면서 “20여년 전 프로게이머들이 등장하면서 어린 학생들의 꿈이 됐던 것처럼, 드론 분야에서도 김 선수가 그런 존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국내 드론 레이싱 랭킹 10위권에 드는 선수 대부분은 초등학생이다. 국제 무대 선수들도 점점 어려져, 지난해 중국에서는 10세 선수가 등장하기도 했다. 드론 레이싱 프로 선수로 진로를 정하는 사례도 생겼다. 드론 레이싱 한국 대회 초대 챔피언이었던 손영록(19) 선수는 올해 ‘드론학과’라 불리는 건국대 스마트운행체공학과에 입학해 현재 유럽리그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드론 레이싱 대회인 DR1은 유로스포츠ㆍESPN 등에서 TV 중계가 될 정도로 위상이 높다. 드론업계 관계자는 “아직 국내에는 규제 등 제도적으로 미비한 점이 많아 드론 확산이 더딘 상황이지만 앞으로 국내에서도 미국, 유럽, 호주, 동남아처럼 드론 레이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장 만드는 드론
농업 분야에선 이미 드론이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국제무인비행시스템협회(AUVSI)는 미래 상업용 드론의 80%를 농업용 드론이 차지할 걸로 예상한다. 특히 국내에서는 지난해 가수 김건모씨가 방송에 나와 “드론으로 한 시간에 700만원을 벌었다”고 얘기한 뒤로 농업용 드론 및 자격증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농업용 드론은 산업용 드론에 비료나 농약을 실어 밭에 골고루 살포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1헥타르 넓이 밭은 8분 정도면 방제를 끝낼 정도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용되는 농업용 드론은 1,000대 정도다. 작물 관리 분야에서도 드론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GPS가 달린 드론에 적외선과 자외선 카메라 등을 내장한 뒤 프로그래밍으로 밭 영역을 설정해주면, 일일이 조종하지 않아도 드론이 자동 이륙해 농작물 상태와 온도 등을 분석해주는 식이다.
앞으로는 재난구조, 배송, 통신 분야에서도 드론의 성장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드론 업계 관계자는 “2020년까지 산업용 드론 시장은 매년 연평균 성장률 33%를 기록하며 7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탑재 등 다양한 영역의 시도도 이루어지는 만큼, 앞으로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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