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고레에다 감독이 발굴
자연스러운 감정 끌어내려
시나리오 안 주고 즉석 연기
슬픈 장면에서도 애써 마음 감춰
“사실은 엉엉 울어버릴 뻔했죠”
열두살 소년의 투명한 눈망울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일본의 영화 대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첫눈에 “바로 이 아이다”라고 알아본 그 눈빛이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4)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에서 아역배우들과 섬세한 하모니를 빚었던 고레에다 감독은 신작 ‘어느 가족’(26일 개봉)에서 새 얼굴 죠 카이리를 발견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받은 황금종려상(최고상) 트로피만큼 빛나는 발견이다.
죠는 ‘제2의 야기라 유야’라 불린다. 야기라는 ‘아무도 모른다’로 2004년 칸국제영화제에서 14세 나이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다. 한국 배우들 중에선 여진구의 아역 시절에 비유할 만하다. 최근 이메일로 만난 죠는 “대단한 선배와 비교돼 죄송스럽지만 기쁘기도 하다”며 쑥스러워했다.
‘어느 가족’은 할머니의 연금과 좀도둑질로 생활하는 가족이 홀로 버려진 여자아이를 데려와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죠는 가족의 생활에 의문을 품게 된 쇼타를 연기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죠에게 귓속말로 대사를 알려주며 티끌 없이 자연스러운 감정을 이끌어냈다. “정말 쇼타가 된 것처럼 연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감독님이 늘 말씀하셨어요. 시나리오가 없어서 처음엔 불안했지만 점점 익숙해졌고 나중엔 연기하기 편했어요.”
쇼타는 아빠 오사무(릴리 프랭키)를 잘 따르지만 “아빠”라 부르지 않는다. 여동생 유리(사사키 미유)가 좀도둑질을 하는 모습에 당황했을 때도, 가족의 비밀이 드러나 혼자 남겨졌을 때도, 쇼타는 말간 얼굴로 애써 마음을 감춘다. 그래서 더 아리고 쓰리다. “사실은 연기를 하다 엉엉 울어버릴 뻔했어요. 쇼타는 울면 안 되기 때문에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어요.”
고레에다 감독은 “지난 10년간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온 것을 모두 담은 영화”라며 “아버지가 되려는 남자의 이야기이자 소년의 성장 이야기”라고 했다. 죠도 카메라 앞에서 부쩍 자랐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어른스러운 이야기도 들려준다. “영화 촬영 이후에 키가 5㎝나 자랐다”며 살짝 자랑도 보탠다.
카메라 뒤에서는 행복한 추억이 차곡차곡 쌓였다. “미유는 진짜 여동생 같아요. 같이 놀다가 싸우기도 했어요. 릴리씨와도 엄청 친해졌어요. 가족이 다 함께 바닷가에 놀러 간 장면을 찍을 때는 정말 즐거웠고요. 아빠와 낚시를 하면서 루어(모형 미끼)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아요.”
죠는 초등학생 아이돌 그룹 스타맨 키즈 멤버로 활동 중이다. 댄스도 좋아하지만 연기를 조금 더 좋아한다. “모든 이들의 마음에 남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꿈이다. 최근 새 드라마 촬영도 시작했다.
‘어느 가족’이 크게 화제를 모았지만 죠의 일상은 여느 초등학생처럼 평범하다. 요즘에는 “시원한 수영장에서 물총놀이를 하고 싶다”면서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 않냐는 마지막 질문에도 장난기 넘치는 대답을 보냈다. “글쎄요. 엄마 아빠가 늦게까지 일하시는 모습이 힘들어 보여서요. 저는 가능하면 어린이인 채로 지내고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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