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ㆍ영업직 등 ‘화이트칼라’
‘복장 단정=매너’ 고정관념 속
이상 폭염의 땡볕 아래서 고생
“간편한 옷차림 권장하는 요즘
예의상 이유로 고집하는 건 문제”
낮 최고기온이 35도에 육박할 정도로 폭염이 절정에 달한 25일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지하철 9호선) 3번 출구를 나서자 긴 소매 셔츠에 정장 재킷을 손에 들고 바삐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짧은 소매 원피스나 얇은 블라우스 등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인 여성 직장인들과 달리, 남성 직장인들은 하나같이 짙은 색 정장바지에 긴 소매 와이셔츠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태양 볕 아래를 바삐 오가고 있었다.
매일 기록적인 온도를 갱신하며 더위가 절정에 치닫는 ‘이상 폭염’의 고통을 땡볕 아래서 일하는 ‘블루칼라(blue-collar)’들만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무직이나 영업직 등 ‘화이트칼라(white-collar)’ 역시 ‘매너’와 ‘복장 단정’이라는 이유로 한여름을 힘겹게 견뎌나가고 있었다.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는 이 더위에 긴 소매 정장을 고집하는 건 다양한 ‘쿨비즈(Coolbizㆍ시원하고 간편한 근무 옷차림)’가 출시되고 권장되는 요즘 분위기와도 맞지 않다는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단정한 복장=긴 소매 정장=매너’라는 고정관념은 특히 고객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직업 군에서 두드러진다. 대형 로펌 변호사 A(40)씨는 “소송 의뢰인들을 대할 때 변호인이 말끔히 갖춰 입지 않으면 신뢰감을 주기 어렵다고들 생각한다”며 “아무리 더워도 일을 할 때는 무조건 정장을 갖춰 입으려 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한 증권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김모(37)씨는 “아무래도 ‘반팔’은 정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예의에 어긋나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주변 동료들과 상사들이 모두 긴 소매에 재킷을 갖춰 입고 있어 혼자 짧은 소매 옷을 입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항상 이동을 해야 하는 ‘영업직’이 겪는 고충은 더 심하다. 한 소규모 제약회사 영업사원 최모(35)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 십수 곳을 들러야 하는데, 이동할 때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최씨는 “땀에 전 생쥐 꼴이 돼서 거래처에 방문하면 정장을 고집하는 게 더 민폐 같다”고 난감해했다.
회사와 상사의 강요로 긴 소매 정장을 입어야 하는 직장인도 있다. 대치동에 있는 한 종합전자전문업체 직원은 “사장이 형식을 중요시해서 전 직원에게 정장 재킷을 갖춰 입으라고 한다“며 “이 더위에 재킷까지 갖춰 입고 출근하다 쓰러지면 산업재해로 인정 받을 수 있냐는 씁쓸한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했다.
젊은 층이나 사회초년생들 사이에서는 ‘예의상 아무리 더워도 긴 소매 셔츠에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최근 회계법인에 입사한 박모(28)씨는 “요즘 같은 때 긴 소매 셔츠의 단추를 목 끝까지 잠그고 재킷을 걸쳐 입으면 그 자체로 숨이 ‘턱’ 막힌다”며 “‘단정함’을 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로 정장을 강요하는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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