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기주(29)는 JTBC 드라마 ‘미스티’에서 뛰어난 이력에 영리한 처세술까지 갖춘 사회부 기자 하지원을 연기하며 칼 같은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에서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왈가닥에 조금은 허점 있어 보이는 시골 아가씨 은숙으로 변신했다. 신인 진기주는 ‘미스티’와 ‘리틀 포레스트’ 만으로 무명 수식을 떼고 대중의 눈에 자리잡았다. “얘가 걔야?”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하며 깊은 인상을 심었다.
지난 19일 종방한 MBC 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에서는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했다.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살인자의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여인 길낙원이었다.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진기주는 “낙원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면서 감정을 이겨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비련의 주인공이다 보니 준비 과정이 남달랐다. 대본을 받아 들고선 수능 시험을 준비하듯 꼼꼼히 준비했다.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하는 연기는 대본을 그대로 읊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대본만 들여다봤다. 길낙원이 배우 오디션을 보다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이리와 안아줘’ 오디션을 볼 때부터 그 장면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최준배 PD님에게 솔직하게 말했더니 오히려 ‘신뢰가 간다’고 하셨어요. 캐스팅된 후 그 장면을 계속 고민했죠. 어느 순간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그 느낌 그대로 연기했죠.”
16세 길낙원이 상처를 끌어안은 채 20세, 28세가 되기까지 그는 인물의 감정선을 다르게 표현하려고 했다.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처음 낸 스무 살 길낙원은 “태연한 척 하지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내면을 드러내려 했다. 28세 길낙원은 사회생활에 적응해 “쑥덕거리는 주변 시선에도 덤덤한” 모습을 그렸다. 진기주는 “PD님이 우스개 소리로 나에게 ‘캐릭터 해석이 소크라테스급’이라고 하셨다”며 웃었다.
진기주는 배우 이전 이력으로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2012년 대기업 S사의 IT컨설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약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지역 방송사 기자로 3개월간 일했다. 2014년 슈퍼모델 선발대회에 출전해 3위로 입상하며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다양한 사회 경험이 연기를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며 “특히 기자 역할은 실감나게 잘 할 수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배우를 동경했지만 꿈을 마음속에 숨겨왔다. 대기업 사원과 기자를 거치며 자신의 길을 찾다가 기획사에 배우 선발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획사에 자기소개서를 넣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안거죠. ‘자기소개서? 내가 잘 쓰는 건데…’라고 생각했어요. 배우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부담이 덜하더라고요.”
2015년 tvN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로 데뷔했다. 출연작이 늘고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욕심이 생겼다. 그는 “이 배우는 계속 봐도 안 질리고 좋네”라는 칭찬을 받고 싶다고 했다. “배우는 선택을 기다리는 직업이잖아요.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계속 (화면에) 얼굴을 비추고, 그런 제 모습을 대중이 반겨주셨으면 해요. 그러려면 실력을 더 키워야겠죠.”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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