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은 극장가 최고 대목이다. 올해도 충무로 대작 4편(‘인랑’ ‘신과 함께: 인과 연’ ‘공작’ ‘목격자’)이 여름 흥행 왕좌를 두고 대전을 치른다. 관객의 선택을 돕기 위해 한국일보 영화담당 기자와 영화평론가가 매주 한 편씩 꼼꼼히 들여다 보고 별점을 매긴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영화 ‘인랑’이 베일을 벗었다. 일본의 영화 대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각본을 쓴 동명 SF 애니메이션을 ‘밀정’의 김지운 감독이 실사화했다. 배우 강동원과 정우성 한효주 김무열 한예리 최민호도 힘을 보탰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1960년대 일본으로 설정된 원작의 시대 배경을 2029년 통일 직전 한반도로 옮겼다. 강대국들의 경제 제재로 민생이 악화된 혼돈 속에 반통일 테러단체 섹트가 등장하고, 경찰조직 특기대는 무리한 진압 작전을 펼치다 위기를 맞는다. 정보기관 공안부는 그 틈을 노려 특기대를 해체시키기 위한 공작을 벌이고, 국가기관 간의 암투 속에 특기대 내부 비밀조직 인랑이 정체를 드러낸다.
여름 스크린 전쟁의 포문을 연 ‘인랑’을 항목 별로 들여다봤다.
◆ ‘인랑’ 20자평과 종합 별점
★다섯 개 만점 기준, ☆는 반 개.
스토리
김형석 영화평론가=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격변을 가상 설정하는 서사는 한국영화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여기엔 권력 집단 사이의 암투와 대결이 펼쳐지는 ‘정치 스릴러’ 요소가 결합되기 마련이고, 당연히 그 대립 양상은 물리적 폭력의 충돌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인랑’의 이야기는 최근 한국영화의 트렌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문제는 관객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다소 불친절하다는 점이다. 특히 중반 이후 음모와 계략이 개입되고 멜로 라인이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전체적인 플롯 라인의 가닥이 흐트러진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인랑’이라는 존재의 근거에 대한 설명도 조금은 부족하다. (★★)
김표향 기자=국가기관 간의 권력 투쟁과 개인의 생존 투쟁이 한줄기로 모였다가 갈라지기를 반복하며 기묘한 긴장감을 빚어낸다. 충돌 순간도 격렬하다.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정치드라마로 봐도 흥미롭고, 집단 속에서 지워진 개인의 존재론적 고민을 탐구한 심리드라마로도 손색없다. 그러나 왜 통일을 앞둔 혼돈의 시기여야만 했는지, 반통일 테러단체가 선인지 악인지, 조직과 개인의 투쟁이 드러내는 진실은 무엇인지, 메시지가 선명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즉, 시대 분위기는 있지만 시대성은 약하다. 굳이 2029년 대한민국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장르영화로선 빼어나지만, 주제의식이 다소 아쉽다. (★★★)
비주얼
김형석=촬영과 미술을 포함, 액션의 스펙터클이나 특수효과의 스케일 등 전반적으로 비주얼의 완성도가 높다. 이것은 김지운 감독의 장기이자 인장인데, 그는 어떤 장르를 선택하든, 어떤 환경에 처하든, ‘그림’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을 발휘한다. 특히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비주얼은 공간이다. 액션의 주무대가 되는 지하 수로 세트를 중심으로, 2029년이라는 근미래의 시점을 반영한 로케이션 등은 영화 전체의 디스토피아 톤을 잘 반영한다. 거대한 갑옷을 입은 캐릭터가 폐쇄된 공간에서 펼치는 화력 강한 액션도 한국영화가 처음 시도하는 부분이다. (★★★☆)
김표향=액션도, 미술도, 미장센도, 근래 나온 영화들 중에 단연 돋보인다. 스크린에 비장미와 세련미가 흘러 넘친다. 미로 같은 지하 수로에서 벌어지는 추격전과 총격전은 특히 놀랍다. 긴박하진 않으나 대단히 위압적이다. 액션에서 처음 느껴 보는 쾌감이다. 미술과 카메라는 공간을 무심히 채우고 있는 공기의 무게와 질감까지 포착한다. 이 액션 시퀀스만으로도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액션 잘하기로 소문난 강동원과 정우성의 ‘아름다운’ 격투 장면은 보너스다. (★★★★)
연기
김형석=최근 한국의 액션ㆍ스릴러 대작들이 멀티 파워 캐스팅을 내세우는데 ‘인랑’은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다. 강동원과 정우성이라는, 강력한 비주얼을 지닌 두 남자 배우를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건 큰 기대감을 지니게 하며, 한효주도 한 축을 이룬다. 한예리 김무열 최민호 등은 ‘조연진’이라는 표현이 무색한 라인업이다. 이러한 개별 캐스팅의 강력함에 비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보긴 힘들다. 전형적인 장르 연기 톤을 더 강조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데, 의외로 큰 비중의 내면 연기 부분이 영화의 속도를 늦춘다. (★★☆)
김표향=강동원은 자신만의 아우라로 영화의 전체적인 무드를 조성하고, 정우성은 강렬한 존재감으로 그 무드를 변주한다. 조합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인간병기 임중경(강동원)을 자각하게 하는 여성 캐릭터인 이윤희(한효주)는 다소 평면적이라, 정서적 진폭이 큰데도 불구하고 호소력이 약하다. 한효주의 안정적인 연기로도 설득되지 않는다. 덧붙여 몇몇 조연 캐릭터는 불필요해 보인다. 멀티캐스팅에 걸맞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기대한 관객에겐 아쉬울 듯하다. (★★★)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