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구하던 부모 떠내려 가기도”
1000여명 이재민들도 패닉 상태
“마을 근처에 왜 댐을…” 정부 원망
구호물자 부족…비 계속 내려 공포
현장과 가까워질수록 차창 밖은 녹색에서 황토빛으로 바뀌었다. 라오스 아타푸주에 건설 중이던 세피안 세남노이 수력발전댐 보조댐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사흘째인 26일 오후. 사고현장과 가장 근접한 국제공항인 팍세공항에서 아타푸주로 향하는 16E-16B국도 주변은 물난리 여파로 살풍경했다. 도로는 산에서 쓸려 내려온 황토흙을 뒤집어 쓰고 있었고, 중간중간 산사태로 막혔다 새로 뚫린 흔적들이 역력했다. 다리도 끊기고 가교가 설치 돼 차량들은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팍송에서 만난 캄파(49)씨는 “지금까지 이런 물난리는 처음 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해지역서 200km가량 떨어진 참파삭주 팍송의 창고를 활용한 임시 대피소에는 이재민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구호단체 관계자는 “사흘 만에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왔다”며 “앉은 채로 자거나 칼잠을 자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재민들은 당장 몸은 피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구급약을 나눠주고 있던 한 관계자는 “지금부터가 문제다. 살아서 왔지만 소도 닭도 모두 떠 내려가고 농작물도 다 쓸려 갔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앞으로 지낼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자국 정부에 대한 원성도 들렸다. 한 투어 가이드는 “이번 일로 한국에 대한 원망은 없다. 하지만 정부가 왜 댐을 지을 때 좀 더 마을에서 멀리 짓지 않았는지, ‘동남아의 배터리’가 되겠다고 하면서 국민들에게는 무슨 도움을 줬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현지 가이드 푸팃(30)은 사고 목격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몸서리를 쳤다. 그는 “1분에 1m씩 물이 차 올랐고 너나 할 것 없이 나무 위로 지붕 위로 기어 올랐다. 물이 너무 빨리 차올라 어린 아이들만 나무 위로 밀어 올린 뒤 부모들은 진흙 물살에 떠내려 갔다”고 전했다.
이날 팍세에서 재해 현장으로 가는 길은 각종 구호 물자와 소형 선박 등 구조 장비를 싣고 들어가는 자동차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안내를 맡은 푸팃은 “여긴 그래도 장비들이 접근할 수 있어 막힌 길도 뚫고, 끊어진 다리도 다시 잇지만, 저 안쪽은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물은 서서히 빠지고 있어도 현장 일대의 혼란은 여전하다. 한국을 비롯한 이웃 국가를 중심으로 구호 물품 지원이 들어오고는 있지만, 최소 3,000명 이상의 피난민들이 모여 든 긴급 피난소마다 물자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팍송의 임시 대피소를 관리 중인 캄라 수완나시는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계속 비가 오고 있는 게 큰 문제다. 당장 매트리스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들른 대피소의 시멘트 바닥은 이곳이 동남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가웠다. 팍세 주민들은 이불과 베개, 생수, 과자 등을 옆에 마련된 공터에 한짐씩 풀어놓고 갔다.
생존자들은 여전히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몰된 반마이 마을에서 탈출한 쩐완비얀씨는 사고 발생 불과 2시간 전에야 소개 명령을 들었다며 자신의 집에 물이 차오르는 동안 다급히 고지대의 이웃집으로 달려갔다고 AFP통신에 밝혔다. 그는 “하룻밤 내내 지붕 위에서 벌벌 떨다가 나무 배가 한 척 지나가는 것을 보고 아내와 아이를 먼저 보냈다. 아내는 죽으려면 같이 죽겠다며 아이를 몸에 묶더라”라고 말했다. 다행히 쩐씨 일가족은 무사히 뭍으로 구조됐다.
라오스 정부는 실종자 구조에 나섰지만 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6일 비엔티안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사남사이를 방문하고 수도 비엔티안으로 복귀한 통룬 시술리트 총리는 25일 기자회견에서 “최소 131명이 실종됐고 3,060명이 집을 잃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라오스 국영 KPL통신은 26일 사망자수를 27명이라고 밝혔다.
아타푸(라오스)=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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