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건 청구 중 극소수만 허용
“안철상 발언 가이드라인” 분석도
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관련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청구 등에 대해 무더기 기각사태가 계속되면서 법원 측이 사실상 1심 재판과 마찬가지로 판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원 측이 ‘집안 일’에 대해 유독 영장을 엄격하게 심사하면서 ‘제 식구 감싸기’ 논란도 커지고 있다.
29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ㆍ인사심의관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직후인 27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한동훈 3차장검사와 특수1부(부장 신봉수)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 전원은 긴급 회의를 열었다. 검찰 측은 수사에 필요한 영장을 법원 측이 전부 기각한 상황에 대해 분석하고 향후 수사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안팎에선 법원 측이 ‘집안 일’에 대한 영장 심사를 범죄 성립 유무를 판단하는 1심 재판처럼 까다롭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앞서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100여건의 압수ㆍ통신영장 중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자택 및 사무실 압수수색 등 극소수만 허용했다. 이에 따라 향후 명백하게 범죄가 소명될 정도여야 영장을 내주고, 향후 피의자로 지목된 법원 측 인사들에 대한 구속 영장도 쉽게 내주지 않겠다는 의사까지 내비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비판적인 얘기가 나온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영장 판사가 법원 측 입장에 서서 (영장) 발부 기준을 높이면 검찰 수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압수수색 등의 과정 없이 범죄가 입증 가능하면 압수수색 영장이 왜 필요하겠냐”고 꼬집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법원 측의 엄격한 영장 심사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우선 법원 측이 1심 재판처럼 영장을 심사하는 건 수사 대상으로 지목된 전직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의 불만 기류에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전직 법원행정처 판사들은 “잘못한 게 없는데 억울하다”며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얽히고 설킨 판사 인맥 구조상 이런 상황에서 쉽게 영장을 내주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등 현 대법원 수뇌부가 검찰 수사에 대해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영장 판사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으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특별조사단을 이끌었던 안 법원행정처장은 최근 국회에서 “재판거래는 없었다고 믿는다”고 언급하는 등 수뇌부가 서로 혼란스런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한편,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는 이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임 시절 903차례 9억6,480여만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았으며,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를 한 2015년 8월쯤에는 매달 750만~1,285만원씩 평소보다 2~3배 많은 특활비를 받았다고 밝혔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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