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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정원사의 화분, 삭막한 엘리베이터를 밝히다

입력
2018.08.02 04:40
수정
2018.08.02 14:3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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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살 정원사의 삐뚤빼뚤 손글씨 

 “탈 때마다 ‘아빠 미소’ 짓게 돼요” 

 고양시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 

 제안 이틀 만에 600가구가 찬성 

 # 

 “노래 너무 못 불러요” “흡연 말라” 

 불편 호소엔 공감 메모 줄 잇기도 

 “다른 집 블루투스 스피커 연결 마세요” 

 웃기고 황당한 상황도 종종 벌어져 

’꼬마 정원사’ 김강후(8)군이 경기 부천시 중동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놓아 둔 화분과 안내문. 길의준(33)씨 제공
’꼬마 정원사’ 김강후(8)군이 경기 부천시 중동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놓아 둔 화분과 안내문. 길의준(33)씨 제공
’먼저 인사합시다’ 벽보. 울산 울주군. 강수광(36)씨 제공.
’먼저 인사합시다’ 벽보. 울산 울주군. 강수광(36)씨 제공.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게시된 경비실 에어컨 설치 제안서와 주민 동의 서명. 김모(45)씨 제공.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게시된 경비실 에어컨 설치 제안서와 주민 동의 서명. 김모(45)씨 제공.
풍선껌 주인을 찾는 쪽지. 부산 동래구. 송성철(41)씨 제공.
풍선껌 주인을 찾는 쪽지. 부산 동래구. 송성철(41)씨 제공.
’꼬마 정원사’ 김강후(8)군이 경기 부천시 중동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놓아 둔 화분과 안내문. 길의준(33)씨 제공.
’꼬마 정원사’ 김강후(8)군이 경기 부천시 중동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놓아 둔 화분과 안내문. 길의준(33)씨 제공.

경기 부천시 중동에 사는 길의준(33)씨는 요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즐겁다.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화분 덕분이다. 길씨가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화분을 발견한 건 지난달 16일. 누가 깜빡 두고 내렸나 싶어 다가가 보니 벽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저는~ ‘꼬마 정원사’입니다. 눈으로만 봐 주세요. 꽃 이름은 ‘아스타’.” 길씨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면서 “거의 매일 힘들고 지친 상태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화분이 등장한 후부터 탈 때마다 아빠미소를 짓게 된다”고 말했다.

삭막한 철재 엘리베이터에 생기를 불어넣은 ‘꼬마 정원사’의 정체는 3층에 사는 김강후(8)군. 매주 화분 가꾸기 수업을 듣는 강후는 첫 작품인 아스타 화분에 이어 지난주엔 허브 화분을 놓아 두었다. 사람들이 화분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꼬마 정원사’는 수시로 엘리베이터에 올라 흙을 만져보고 꽃의 상태를 확인하며 물을 줬다. 8월 한 달은 쉬고 9월부터 다시 새 화분을 ‘전시’할 계획이다. 김군의 어머니 심혜라(42)씨는 “주민들이 칭찬과 인사를 건네니까 아이도 좋아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층을 오르내리는 이동 수단 외 별다른 의미를 찾기 어려운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용기를 내 벽보를 붙이고 사연을 공유하고 있다. 이를 접한 주민들은 저마다 손글씨 댓글로 화답을 한다. 지긋지긋한 폭염도 잊게 하는 훈훈한 이야기들, 엘리베이터에 걸린 벽보를 들여다보면 세상은 아직 살만 해 보인다.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 총 30개의 엘리베이터에 주민이 쓴 제안서가 일제히 붙었다.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경비원들의 근무 환경을 위해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자는 내용의 제안은 이틀 만에 전체 966가구 중 600여 가구의 동의를 얻어냈다. 제안을 한 정모(34)씨는 “대부분 고령인 경비원들이 나무 그늘에서 폭염을 피하는 걸 보고 한시가 급하다는 생각이 들어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엘리베이터에 벽보를 붙이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45)씨는 “요즘 경비 아저씨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엘리베이터에 붙은 제안서를 보고 너무 반가워 곧바로 서명했다”고 말했다. 10%가 넘는 주민의 청원을 확인한 관리사무소는 주민투표에 이어 임시 대표자회의를 소집해 설치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울산 울주군의 한 아파트 주민 강수광(36)씨는 지난달 초 엘리베이터에 붙은 벽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웃을 가리켜 “먼 친척보다 가까운 분들”이라고 표현한 벽보에는 “오늘부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용지 여백에는 ‘좋아요’와 ‘♡’ 등 주민들이 적은 손글씨 댓글이 다수 눈에 띄었다. 강씨는 “벽보를 본 후 나부터 주민들과 웃으며 인사하게 되고 더 가까워 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밖에 엘리베이터에서 주운 현금이나 풍선껌의 주인을 찾는 손글씨 메모, 자신이 키운 화분을 드린다는 쪽지 등으로 소소한 감동을 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금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엔 무슨 사연이 걸려 있을까.

’천원짜리 찾아가세요’ 메모. 경기 화성시 동탄면. 김현민(16) 학생 제공.
’천원짜리 찾아가세요’ 메모. 경기 화성시 동탄면. 김현민(16) 학생 제공.
’화분 드립니다’ 메모.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이요한(28)씨 제공.
’화분 드립니다’ 메모.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이요한(28)씨 제공.
금연 호소문.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노진환(45)씨 제공.
금연 호소문.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노진환(45)씨 제공.

 #불편해요… 호소문도 

훈훈한 사연만으로 마무리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웃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경우는 늘 있다. 비슷한 피해를 경험한 이들도 적지 않다 보니 호소문 한 장에 다양한 호응 문구가 따라 붙기도 한다. 지난달 초 경기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흡연 피해 호소문이 붙자 그 주변에 “타인에게 민폐 끼치며 살지 맙시다” “저 가족은 얼마나 힘들면 저러겠습니까” 등 다른 주민들의 공감 메모가 줄줄이 붙었다.

대구 동구의 한 아파트 주민은 지난 4월 이웃의 고성방가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문구를 넣었다. “노래 너무 못 불러요… 노래 연습은 노래방에서 해 주세요”라고. 황당한 호소문도 눈에 띈다. “다른 집의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하지 마세요. 제발!!” 대전에 거주하는 이은지(22)씨는 “어떻게 하면 옆집 블루투스에 연결되나 싶어 웃겼다”고 전했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김희지 인턴기자(이화여대 사회학과 3)

<View&>고성방가 금지 호소문. 대구 동구. 이광우(29)씨 제공.
<View&>고성방가 금지 호소문. 대구 동구. 이광우(29)씨 제공.
블루투스 연결 금지 호소문. 대전 유성구. 이은지(22)씨 제공.
블루투스 연결 금지 호소문. 대전 유성구. 이은지(22)씨 제공.
서울 서대문구의 한 병원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노약자 배려 의자.
서울 서대문구의 한 병원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노약자 배려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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