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폭염 경보 발령 때
경로당 310곳 야간 운영 지정
노인 상당수 모르고 있거나
관리비 등 부담 탓 운영 안해
최고기온이 40도에 육박했던 1일 서울 관악구 보라매경로당. 한낮의 뜨거움을 겨우 버텨낸 이음전(95) 할머니 등 10여명이 오후 6시가 되자 하나 둘씩 경로당을 빠져 나와 집으로 향했다.
사실 이 경로당은 동네에서 몇 안 되는 ‘야간 무더위 쉼터(야간쉼터)’. 이날처럼 폭염특보가 발령될 때면 오후 9시까지도 문을 열어,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노인들은 하나같이 “처음 듣는 얘기”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들이 경로당을 떠난 오후 6시 기온은 37도. 에어컨 설치는 언감생심, 전기료 부담에 선풍기 사용도 부담스럽다는 한 할머니는 “그 시간(오후 9시)까지만 경로당에 있게 해주면 좋은 일이지. 90세 넘은 언니들은 집에서 쓰러질까 봐 걱정 돼”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더위취약계층인 노인을 보호하겠다며 시내 2,521개 경로당 가운데 310곳을 야간쉼터로 지정했지만, 정작 이용 대상자인 노인 상당수가 이를 모르고 있거나 지정 경로당들이 연장 운영을 포기하면서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실제 더위가 극도로 기승을 부린 최근 3일간 서울 시내 경로당 10여 곳에서 만난 노인 100여명 가운데 야간쉼터 운영 사실을 아는 노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야간쉼터로 지정된 종로구 한 경로당의 차모(76) 할아버지는 “그런 게 있었는지 몰랐다“면서 “정작 우리가 모르는데 있으나마나 한 제도 아니냐”고 한숨을 쉬었다.
지정된 쉼터는 ‘전기요금이 많이 나올까 봐 눈치가 보인다’거나 ‘귀갓길 안전 우려’ 등을 이유로 평소와 비슷한 오후 5, 6시면 문을 닫고 있다. 시는 경로당 회장 등 임원 1명을 야간쉼터 관리책임자로 지정해 운영하도록 하고 있는데, 관리 부담 때문에 아예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문제점을 감안해 서울시가 “관리자에게 소정의 수당이 제공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 경로당 회장 강모(80)씨는 “종일 관리를 맡는 회장들에겐 연장근무로 여겨지는 야간쉼터 지정이 달갑지만은 않다”고 했다. 시행은 고맙지만 직접 책임지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경로당 회장은 “밤까지 계속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데 전기세를 지원해주는 구청 눈치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선 노인정책연구센터장은 “제도 운영이 지속되려면 장소와 시간, 관리ㆍ책임자가 모두 분명해야 하는데 관리ㆍ책임 주체가 되는 이들(경로당 임원)의 전반적인 동의가 없었던 것 같다”며 “보건소나 동ㆍ주민센터 협력을 구하거나 어르신일자리사업 참여 인력에게 한시적으로 야간쉼터 관리를 맡기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b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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