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임OO 상고심’ 문건에
청탁받은 前보좌관 형량 줄이고
신청 안한 보석 석방도 미리 판단
실제 재판 문건 내용대로 이뤄져
검찰, 판사 사찰 등 문건 작성한
부장판사 사무실 등 압수수색
양승태 대법원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던 전병헌 전 의원 보좌관의 형량을 전 전 의원 민원에 따라 줄여주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법원행정처 검토대로 실제 형량이 줄어 검찰이 ‘재판 거래’ 여부를 확인 중이다.
3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2006~2014년 전병헌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보좌관이던 임모(54)씨는 2010년 6ㆍ2지방선거에서 동작구청장 후보자 선출과 관련해 후보자 문모씨 부인으로부터 2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14년 9월 1심 재판부는 징역 1년과 2억1,000만원 추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고,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이듬해 4월 대법원은 임씨가 받은 2억1,000만원 중 7,000만원은 다른 지역구 정치인에게 ‘단순’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 부분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전 전 의원 측이 대법원에 민원을 넣은 건 그때쯤으로 보인다. 파기환송 직후인 같은 해 5월 1일 법원행정처는 ‘임OO 상고심 선고 후 전망’ 문건에서 법정 구속된 임씨의 형량을 얼마나 줄여야 추가 구속이 필요 없는지 검토하고 있다. 임씨의 미결구금 일수(재판 확정 전까지 구금된 날짜 수)를 따져 보석 석방할 경우 잔여 형기를 감옥에서 살지 않으려면 8개월로 형량이 줄어야 한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임씨 파기환송심에서 보석 결정을 내릴 것을 전제로 선고 형량까지 미리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같은 달 18일 임씨는 파기환송심에서 보석 결정을 받아 풀려 나고, 같은 달 29일 징역 8개월을 선고 받는다. 공교롭게 문건 검토 내용대로 이뤄진 것이다.
당시 정계와 법조계 안팎에서는 전 전 의원의 손아래동서인 임씨가 불만을 품고 불법 정치자금 일부를 전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할 것이란 얘기가 파다했다. 그즈음 사정에 밝은 정계 인사는 “전 전 의원이 자신을 위해 법원 측에 임씨 선처를 청탁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전 의원이 민원을 넣은 정황은 이미 드러났다. 2015년 5월 6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對국회 전략’ 문건에는 전 전 의원에 대해 ‘최근 개인 민원으로 법원에 먼저 연락→민원 해결될 경우, 이를 매개로 접촉ㆍ설득 추진’이라고 적혀 있다.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해 전해철 의원을 설득하기 위한 접점으로 전 전 의원을 지목한 셈이다.
검찰은 전 전 의원과 당시 대법원 측이 재판 거래를 했을 것으로 의심,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법정 구속된 임씨가 수사 당시에는 두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 ▦지난해 뇌물수수ㆍ직권남용 등 혐의로 청구된 전 전 의원 구속영장이 두 차례 기각된 것 역시 전 전 의원과 대법원 측의 지속적인 밀월관계 때문은 아닌지 들여다보고 있다.
한편, 이날 검찰은 판사 사찰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을 다수 작성한 김모 부장판사의 창원지법 마산지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2월 법원행정처를 떠날 때 2만4,500여개 파일을 삭제해 증거인멸 의혹까지 받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 자체 진상조사에서 문제점이 드러나 징계 절차에 회부되고 재판 업무에서도 배제됐지만, 법원은 판사사찰 등과 관련한 내용에 대한 압수수색은 금지하고, 파일 삭제 혐의(공용물 손상)만 압수수색을 허용해 여전히 ‘제 식구 감싸기’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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