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첫 일 대 일 정상회담을 하고 최악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를 개선하자는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 집권 이후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에 시달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에서 부담을 안은 채로 푸틴 대통령과 마주 앉은 것은 국제사회의 많은 분쟁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특히 러시아가 깊이 개입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을 정리할 필요가 있고, 전통적인 목표 중 하나인 이란 봉쇄도 러시아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ㆍ러 관계의 ‘재설정’을 표방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징검다리 대통령을 맡고 푸틴이 총리로 있던 2009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모스크바를 방문하기도 했다. 2010년 미국과 러시아 간 핵무기 감축 협정 ‘뉴 스타트’가 체결된 것은 이 시기 관계 개선의 결실로 꼽힌다.
이런 오바마 집권기의 관계 개선 노력은, 오바마 대통령의 두 번째 모스크바 방문이 2013년 8월 7일 전격 취소되며 무산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모스크바 방문을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는 일주일 전인 8월 1일 러시아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전 세계에 걸친 도감청 프로그램 프리즘(PRISM)의 존재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임시 망명 신청을 수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악화하고 있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후, 러시아는 이란과 함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지지하며 미국과 대립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앞으로는 핵무기 감축을 논하면서 뒤로는 시리아에서 대리전을 벌이는 꼴이 된 것이다. 일정한 진전을 보였던 핵 감축과 MD를 둘러싼 긴장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스노든 사건’은 예정된 폭발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었다.
이후 양국 관계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에 개입해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었다. 러시아는 G8에서 축출돼 G7이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러시아의 위치를 “지역 강국(regional power)”이라고 격하하기도 했다.
합치면 전 세계 핵무기의 90% 이상을 보유하기 때문에 미ㆍ러는 서로를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서로를 완전히 믿을 수도 없다. 지금도 양국의 세계 전략은 동유럽에서, 중동에서, 한반도에서 계속 충돌하고 있다. 지난 2일 미국 정보기관 수장들은 러시아가 미국의 2018년 중간 선거에도 개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을 포기해야 하는 ‘스노든 사건’과 같은 계기가 언제든지 돌출할 수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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