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 사솔
초5때 알록달록 홀드에 반해
입문 6개월 만에 전국 대회 3위
동적코스 적응 못해 한때 슬럼프
오빠와 훈련하며 재미 되찾아
안전벨트 없는 볼더링이 주종목
3개 종목 모두 메달 따고 싶어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정식 종목이 된 스포츠 클라이밍은 스피드-개인, 스피드-릴레이 그리고 개인종합 성격인 콤바인(스피드ㆍ볼더링ㆍ리드) 등 3개 종목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사솔(24)은 여자부 3개 종목에 모두 출전하는 유일한 국가대표다. 약점이었던 스피드 종목의 기록이 최근 크게 향상되면서 이룬 쾌거다. 비공식이기는 하지만 중국 전지훈련에서 스피드부문 한국 신기록(9초00)을 작성했다. 무엇보다 성적 상승세가 뚜렷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올해 3월 아시안컵(홍콩)에서 2위, 5월 한국 선수권에서 1위에 올랐고, 4월 모스크바 대회(7위), 6월 미국 베일 대회 8위 등 국제 규모 대회에서도 꾸준히 정상급 성적을 내고 있다.
볼더링이 사솔의 주 종목이다. 볼더링은 안전벨트 없이 4~5m 높이의 코스 중 많은 코스를 완등해야 승리한다. 높이는 높지 않지만 손으로 붙잡거나 발을 지탱할 볼드의 수가 적어 공중에서 점프해 매달리는 등 역동적인 동작이 많이 나온다. 사솔은 다른 선수보다 손아귀 악력과 당기는 힘이 강해 볼더링에 유리하다. 단단한 사과 정도는 가볍게 쪼개고, 남자 선수들도 힘들어 하는 ‘한 손 턱걸이’도 가능하다. 정지현 대표팀 코치는 “강력한 힘뿐 아니라 신체 탄력과 상ㆍ하체 밸런스도 중요한데 사솔이 이 부분에서 많이 향상됐다”면서 “여기에 악착같은 승부욕까지 더해지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2004년 우연히 가족들과 함께 찾은 실내 클라이밍장에서 ‘인생 스포츠’를 만났다. 직업 군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육상, 태권도, 수영 등 다양한 스포츠를 접했지만 “지루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중간에 모두 그만뒀다. 하지만 클라이밍은 조금 달랐다. “빨강 파랑 알록달록한 홀드(작은 손잡이)와 볼륨(큰 손잡이)이 벽에 박혀 있었는데,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걸 잡고 올라간다는 게 어린 마음에 너무 재미있고 신났어요” 그때부터 클라이밍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더니 점차 30~40대 아저씨들을 이기기 시작했다. 사솔은 “키 크고 힘 좋은 아저씨들이 못 오르는 코스를 어린 제가 완등하기 시작했어요. 속도도 제가 더 빨랐고요. 완전히 빠져들게 된 계기가 됐죠.”
입문 6개월 만에 전국 규모의 대회에 출전했는데, 덜컥 3위에 입상했다. 중학교부터는 일반 대회에 출전, 나이가 한참 위인 언니들과 기량을 겨뤄 줄곧 메달권에 들었다. 물론 당시 부동의 1위는 ‘대한민국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30)이었다.
사솔에게 김자인은 “항상 대단한 사람”이었다. 10년이 되도록 세계 랭킹 최상위권을 유지할 정도로 흔들림이 없다. 특히 선수들은 큰 대회를 앞두고 체중 조절을 위한 다이어트와 심리적 안정이 가장 중요한데, 김자인은 이 부분에서 항상 모범을 보였다. “자인 언니가 원래 먹는 걸 엄청나게 좋아하거든요. 대회 끝나면 한 3시간 동안 꼼짝 않고 음식을 먹을 정도니까요. 그런데도 대회 전에는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해요” 김자인도 이번 아시안게임 콤바인에 출전한다.
‘잘 나가던’ 사솔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왔다. 스포츠 클라이밍 코스는 코스 설계자의 취향이나, 유행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사솔은 당기거나 힘을 사용하는 ‘정적 코스’에 강점이 있는데 2016년 이후로 공중에서 점프하거나 매달리는 ‘동적 코스’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성적이 미끄러졌다. ‘예선의 여왕’이라는 반갑지 않은 별명까지 붙었다. 예선에서는 최상위권이었지만, 정작 결승에 오르면 메달권 밖으로 쳐지기 일쑤였다. “난 그냥 어정쩡한 보통의 선수구나” “이 정도가 한계야” “직업이니까 그냥 하는 거지 뭐” 이런 생각만 가득했다. 이런 매너리즘을 극복하게 해 준 조력자가 스포츠 클라이밍 동료이자, 한 살 터울 친오빠 사랑(25)이었다. 그 동안 성적 내기에 급급하다 보니, 지금의 사솔을 있게 해 준 클라이밍의 재미를 잊고 있었는데 사랑이 바로 그 점을 일깨워준 것이다. 고향 청주에서 함께 클라이밍장을 다니며 훈련 프로그램도 짜고, 어려운 코스도 함께 정복했다. “너(사솔)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지레 겁먹다 보니 성적도 안 나오는 것”이라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조금 못하면 어때? 재미있으면 되지’. 재미를 되찾은 사솔의 성적은 다시 탄력을 받고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아시안 게임 목표는 3개 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하는 것이다. 스피드 종목에서 조금만 성적을 끌어올린다면 ‘전 종목 메달’이 꿈만은 아니다. 특히 박서현, 차유진과 함께 출전하는 스피드 릴레이의 경우, 세 선수 모두 고른 경기력을 보이기 때문에 금메달까지 가능하다. 경쟁국은 역시 일본이다. 경험 많은 아키오 노구치(29)와 신예 미호 노나카(21)의 벽을 넘어야 한다. 이후에는 2020 도쿄 올림픽 메달이 목표다.
문제는 아시안게임 5일 동안 스피드ㆍ콤바인ㆍ스피드릴레이까지 3개 종목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강행군 일정. 극심한 체력 소모가 예상되는 만큼 경기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야외에서 치러지는 종목 특성상 팔렘방의 무더위도 변수다. 사솔은 손과 발에 땀이 많은 편인데, 이런 무더위가 자칫 실수를 유발할 수 있다. 사솔은 “최초 메달의 주인공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클라이밍 선수들을 많이 응원해 달라”라며 밝게 웃었다.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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