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에 비핵화의 대가로 형식적인 종전 선언을 요구하고 있고,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는 한국도 이를 지지하고 있지만, 미국은 아직 종전선언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미국이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에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분석했다.
첫째는 미국 내에서 북한에 종전선언을 내어주기 전 북한의 비핵화 절차에 진전을 보고 싶다는 강경한 입장이 여전히 우세하기 때문이다. NYT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합의를 미국과 북한이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봤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이끄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계획 중단과 핵물질 해체 등을 선결조건으로 보고 있지만, 북한 지도부는 자신들이 미군 유체송환이나 핵ㆍ미사일 실험 중단 및 시설 파괴 등으로 상당한 선의를 보였다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한 관계개선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두번째는 한반도 종전선언이 주한미군의 철수 또는 감축으로 이어지면서 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NYT에 따르면 일부 미국 관료들은 주한미군이 단순히 북한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억제하고 한국ㆍ일본ㆍ호주 등 아시아 동맹을 보호하는 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종전선언이 실현되면,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약화돼 미국의 아시아 전력에도 손상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은퇴한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미국의 종전선언이나 평화선언, 더 나아가 평화협정은 단순히 선언 자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항상 더 큰 맥락 속에 존재해 왔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의회도 비슷한 인식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서명한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 주한미군 병력을 의회 승인 없이 2만2,000명 이하로 줄일 수 없도록 명시하기도 했다.
NYT는 종전선언으로 향하는 속도에도 두 한국과 미국 사이 입장차가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과 한국은 연내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상적인 그림은 9월 18일 시작되는 유엔총회 이전에 종전선언이 달성되는 것이다. 존 딜러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NYT에 “김정은이 9월 유엔총회에 종전선언 합의문을 들고 나타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이는 대북 경제제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이기 때문에 북한이 국제사회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김 위원장이 직접 유엔과 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해석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도 6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이 잘 풀린다는 전제 하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김정은을 뉴욕으로 초청할 수 있다”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남북한은 당초 7월 종전선언을 고려했지만 이는 무산됐고, 9월 중으로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 3차 정상회담에서도 종전선언을 논의할 것은 거의 확실시된다. 하지만 NYT가 인용한 미국 관료들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고 있으며, 미국이 요구하는 핵물질 목록 공개 등 조치가 없는 가운데 남북한이 종전선언을 지나치게 서두른다고 보고 있다. NYT는 이 때문에 한국과 미국의 입장차가 커지면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동맹간 균열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다만 NYT는 과감한 결단과 초대형 외교 행사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에 동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덧붙였다. 북미 교착상태를 해소하는 빠른 결정을 내리면서 이를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업적으로 삼으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셉 윤 전 특별대표는 “미국과 북한이 결과적으로는 ‘선언 대 선언(declaration-for-declaration)’ 교환을 시도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핵물질 보유 내역을 공표(declare)하는 동시에 미국이 종전선언(declaration)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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