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이현동 1심 판결문’ 입수
원세훈 국정원장 취임 3개월 만에
‘美건물 매수 자금’ 추적 지시
이현동에게 공작금 10억대 지급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국가정보원이 김대중(DJ) 전 대통령 해외비자금을 추적하기 위해 기획한 이른바 ‘데이비슨 사업’의 핵심 공작 활동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수집된 정보에서 출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이런 방식으로 알게 된 DJ 차남 홍업씨 측근 연루 고발 사건의 미국 국세청(IRS) 수사 정보를 빼내기 위해 해외정보원에게 약 3억원을 대가로 지불하기도 했다.
14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이현동 전 국세청장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데이비슨 사업’이라고 불린 ‘DJ 뒷조사’ 사건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취임 3개월 만인 2009년 5월 최종흡 당시 국정원 3차장에게 DJ 가족 계좌 등을 건네며 비자금 추적을 지시한 것이 시작이었다. 원 전 원장은 자료를 언론에 제보해 DJ 비자금 실체를 표면화할 것도 지시했다. 공작명 데이비슨은 DJ의 ‘D’에서 따왔다.
공작을 실행한 국정원 대북공작국 이모 처장은 당시 국세청 차장이었던 이현동 전 청장에게 미국의 DJ 비자금 추적을 요청하며 2년 간 12회에 걸쳐 5억3,500만원과 4만7,000 미국달러의 대북공작금을 지급했다.
이 전 청장 지시를 받은 박모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은 2010년 5월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뉴욕의 한인보수단체가 홍업씨 측근으로 추정되는 이모씨 등 3명을 미국 IRS에 고발했다는 기사를 봤다. 이 사건은 ‘2004년 홍업씨 측근이 미국 뉴욕 건물 매수에 쓴 돈이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풍문에 대해 보수단체가 수사를 의뢰한 것이었다.
박 관리관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정보를 받는 대가로 IRS에 다니는 해외정보원 A씨에게 30만 달러(3억4,000여만원)를 줬다. 그러나 IRS는 2012년 1월 사건에 대한 진위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씨와 최초 대출자를 사기죄로 비공개 기소한 채 수사는 종료됐다.
그러자 김승연 당시 국정원 대북공작국장은 B씨에게 공소장을 구해줄 것과 IRS를 통해 이씨가 사기죄로 기소됐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할 것을 요청했다. 박 관리관은 법정에서 “2012년 5월 김 국장이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된 사람(이씨)이 처벌됐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공개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2012년 대선 여건 조성에 공소장을 이용하려 한다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데이비슨 사업 자체는 대북관련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2010년 상반기 국정원 해외공작국 정보관이 ‘미국 내 DJ 비자금 중 1억 달러가 DJ 셋째 아들 홍걸씨가 운영하는 중국 회사 등을 통해 북한 평양 과기대에 송금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변호인 측 증거가 근거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에 기초해 이현동 전 청장을 국정원에 대한 ‘단순 협조자’로 간주해 무죄를 선고하고, 비공개 재판 심리를 진행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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