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등 세계유산 등재 이후
‘강제노역’ 알리겠다는 약속 외면
한ㆍ중, 위안부기록물 유산 추진엔
거액 분담금 쥐고 유네스코 압박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6월27일 군함도(軍艦島)를 포함한 일본의 근대산업혁명 유산과 관련해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된 사실 등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권고한 2015년의 결정문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했다. 일본 측은 근대산업시설 23곳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 피해자를 언급했고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나가사키(長崎)에 설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나가사키가 아닌 도쿄(東京) 한복판에 만들겠다면서 ‘강제노역’ 대신 ‘일본의 산업을 지원했다’는 표현을 사용한 보고서를 제출해 한국으로부터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어기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역사인식을 둘러싼 일본과 주변국의 갈등은 일본 근대산업시설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촉발됐다.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 대부분이 제국주의 시기 강제동원과 맞물리면서 주변국과 역사인식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자국사 중심의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 시도에 맞서 한국과 중국이 등재 경쟁에 뛰어들면서 유네스코를 무대로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2015년 일본의 역사 도발에 맞서 난징대학살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당시 일본은 심사과정의 의문을 제기하면서 유네스코 분담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항의 의사를 표했다. 지난해엔 한중일 시민단체가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했으나 일본의 반발로 보류됐다.
일본은 유네스코 분담금과 관련해 지난해 약 400억원 수준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 큰 손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 위원회에서 미국이 탈퇴하면서 그 영향력이 보다 강화될 전망이다. 한국에선 군함도의 문화유산 삭제를 요구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황선익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조교수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다음에는 취소나 제재 조치를 강제적으로 취하기 어렵다”며 “상대국의 유산 선정 동향을 주시하면서 역사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주변국과 전문가 등 지지그룹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1996년 히로시마(廣島) 평화공원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근대 산업시설 등을 중심으로 한 문화유산 발굴과 등재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 차원에서 지역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유산 발굴에 적극적이라는 점도 역사논쟁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홋카이도(北海道)와 도호쿠(東北) 지방의 조몬유적지(신석기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 등재 국내 후보로 결정했다. 관련 논의에는 니가타(新潟)현과 사도(佐渡)시가 신청한 사도광산도 포함됐으나 탈락했다. 니가타현과 사도시 측은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재추진할 방침인데, 사도광산은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 근로자가 1,4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2014년 가고시마(鹿児島)현 미나미규슈(南九州)시도 지란(知覧) 특공평화회관에 보관된 자살 특공대원들의 유서 등을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당시 한국과 중국은 군국주의 미화를 이유로 반발했고, 국내 후보 선정과정에서 일본만의 시각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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