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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정부는 전폭적 지원하는데... 스스로 살길 찾는 ‘한국 반도체’

입력
2018.08.16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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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 기술격차 3년 난다지만… 

 中 YMTC, 독자기술 엑스태킹 개발 

 내년 32단 낸드플래시 양산 눈앞 

 국유기업 푸젠진화도 6조원 투입 

 올해 서버용 고가 D램 양산 추진 

 

 # 중국의 반도체 추격 만만찮아 

 中, 2025년까지 자급률 70% 목표 

 품질 떨어져도 자국 기업에 적용 

 안정적 공급처 확보 땐 기술 발전 

 그후 싸게 팔아 경쟁사 타격 줄듯 

 

 # 한국은 반도체 생태계 허약 

 핵심장비ㆍ재료 해외업체에 의존 

 정부 R&D지원예산도 매년 줄어 

 "메모리 편중된 산업구조 바꾸고 

 장비ㆍ소재ㆍ부품 함께 성장해야" 


지난 2013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플래시 메모리 서밋 2013’에서 삼성전자는 V낸드플래시 메모리로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끊겨도 데이터를 보존하는 플래시 메모리의 한 종류로, 당시만 해도 2차원(평면) 낸드 제품만 존재해 데이터 용량 확대가 한계에 부딪혔다. 삼성전자는 저장공간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3차원 낸드플래시 양산에 성공하며 메모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어 매년 플래시 메모리 서밋에서 독보적인 낸드 기술력을 과시했고, 2016년에도 세계 최초의 4세대(64단) V낸드를 선보였다.

이달 7일(현지시간) 같은 장소에서 개최된 ‘플래시 메모리 서밋 2018’에서는 중국 반도체기업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스(YMTC)가 주목을 받았다. YMTC 사이먼 양 최고경영자(CEO)는 32단 3차원(D) 낸드플래시 시제품을 선보이며 “낸드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독자 기술 ‘엑스태킹(Xtacking)’으로 올해 10월 시험생산을 하고, 내년에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플래시 메모리 업계 최대 콘퍼런스에서 중국 반도체 기업이 기조연설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6년 7월 설립된 YMTC는 불과 2년 만에 낸드 플래시 양산을 공식 발표하며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 뛰어들었다.

 중국의 반도체 추격이 위협적인 이유 

YMTC의 32단 낸드는 삼성전자가 2014년 양산한 2세대 V낸드 제품에 해당한다. YMTC가 내년에 64단 낸드 양산에 나선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삼성전자가 2016년 64단 낸드를 내놓은 것을 감안하면 기술격차는 적어도 3년이다.

반도체 수율(완성품 비율)은 양산을 해봐야 알 수 있다. YMTC가 내세운 엑스태킹 기술도 시장의 검증을 거쳐야 명확해진다. 엑스태킹은 데이터 저장공간 아래에 제어회로를 붙이는 방식인데, NH투자증권 도현우 애널리스트는 “아직 기술력이 낮아 선택한 기술 같다”며 “엑스태킹은 단위 면적 당 메모리 밀도를 높일 수 있어도 칩 하나를 만드는데 두 장의 웨이퍼를 사용해 제조 비용이 늘어나는 게 단점”이라고 분석했다.

YMTC가 ‘플래시 메모리 서밋 2018'에서 공개한 엑스태킹은 두 장의 웨이퍼를 사용해 저장용량을 키우고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YMTC 홈페이지 캡처
YMTC가 ‘플래시 메모리 서밋 2018'에서 공개한 엑스태킹은 두 장의 웨이퍼를 사용해 저장용량을 키우고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YMTC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도 글로벌 업계가 긴장하는 것은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의 기업이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반도체 시장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YMTC는 중국의 ‘반도체 공룡’으로 성장한 국영기업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다. 지난 4월 시진핑 중국 주석이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며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역설한 곳도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의 YMTC 낸드플래시 공장이었다.

YMTC와 같은 해 설립된 푸젠성(福建省) 진장(晉江)의 국유기업 푸젠진화(JHICC)는 약 6조원을 투입해 서버용 고가 D램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안후이성(安徽省) 허페이(合肥)의 이노트론은 기술장벽이 높은 모바일용 D램에 주력 중이다. 푸젠진화는 올해 3분기, 이노트론은 4분기가 양산 목표 시점이다. 늦어도 내년 초에는 제품을 선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6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32%였다. 전 세계 반도체의 3분의 1을 소비하지만 자급률은 15%에 불과하고, 메모리는 100% 외국기업에 의존한다는 게 중국 정부의 오랜 고민이었다.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잡은 중국 정부는 YMTC 양산품의 품질이 떨어져도 자국 기업들에 적용을 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는 빠르게 기술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중국이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을 세계 1위로 올린 것처럼 현재 기술력이 낮은 반도체라도 일단 궤도에 진입하면 다음 차례는 제 살 깎는 가격경쟁을 통해 경쟁사를 고사시키려 들 게 분명하다.

손해를 보더라도 물량부터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해 저가 시장을 점령하고, 이를 토대로 경쟁사 인재영입과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력을 축적한 뒤 고가 시장을 넘볼 것이다. 부품 공급자인 동시에 완제품 시장에서도 ‘선수’로 뛰고 있는 삼성전자를 껄끄러워하는 애플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이 가격 인하와 공급자 다변화를 노리고 먼저 중국 업체에 손을 내밀 여지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기술력이 낮아도 중국의 메모리 산업 진입은 글로벌 경쟁 구도를 흔들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다”고 우려했다.

 ‘반도체 생태계’ 구축 못하면 위험하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 진출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15일 코트라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15년 ‘중국제조 2025’ 계획을 수립하기 전부터 빈약한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공을 들였다. 국영 기업에 반도체를 맡기며 ‘소프트웨어 및 집적회로 산업 육성에 관한 정책’(2000년)을 수립했고, ‘국가 집적회로 산업발전 추진강령’(2014년) 등을 통해 자금지원 및 세금 감면, 인재 육성 등을 총체적으로 지원했다.

2014년 9월 반도체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설립한 투자기금은 5,000억위안(약 82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9월 기준 투자기금은 55개의 프로젝트에 투자됐다. 든든한 자금은 칭화유니그룹이 2016년부터 총 1,000억달러(약 113조원)를 투입해 우한과 난징(南京) 등에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미국 마이크론 등 선진기업 인수를 시도하는 배경이 됐다.

반면 우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스스로 살 길을 찾아왔다.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노력으로 ‘기술 초(超)격차’를 유지하며 메모리 1위 타이틀을 지키고 있지만 반도체 생태계는 허약하다. 반도체 생산장비 국산화율은 18%에 그치고, 재료도 국산화율은 48% 수준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반도체 산업 연구개발(R&D) 지원예산은 2013년 1,010억원에서 지난해 314억원으로 줄었다. 지난 10년간 신규 R&D 예산은 총 2,100억원에 그치고, 2016년에는 아예 신규 예산이 한 푼도 없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이하 미세공정을 위해 도입하는 극자외선(EUV) 노광기 같은 핵심장비들도 전적으로 해외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인 박재근 한양대 석학교수는 “장비ㆍ소재ㆍ부품이 맞물려 성장해야 튼튼한 생태계가 형성되는데, 우리는 그걸 못하고 있다”며 “해외 장비업체들이 삼성전자와 함께 개발한 장비를 중국 반도체 기업에 팔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로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경기 화성캠퍼스 S3라인 전경.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로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경기 화성캠퍼스 S3라인 전경. 삼성전자 제공

 메모리 편중 해소도 시급 

메모리에 편중된 산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시스템 반도체 육성도 요구된다. 시스템 반도체는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비롯해 정보기술(IT) 기기를 구동하는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팀을 별도 사업부로 승격하며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본격화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파운드리 자회사 시스템아이씨를 설립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생산거점을 중국으로 이전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이 집계한 지난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매출액은 40억6,600만달러로 2016년(45억1,800만달러)보다 오히려 줄었다. 삼성전자 점유율이 6.72%(4위)로 정체 상태인데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는 지난해 매출액을 30억1,700만달러(전년 대비 7.6% 상승)로 불리며 삼성전자를 맹추격 중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와 파운드리 기업이 함께 발전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한국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더욱 노골적으로 인력ㆍ기술 탈취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데,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대비책도 충분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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