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피해자 거절 태도로는
성폭력 범죄라고 볼 수 없다”
우리 법체계 미비점 지적 눈길
재판부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성폭력범죄 처벌과 관련한 우리 법체계 미비점을 지적해 눈길을 끌고 있다. 명시적 동의ㆍ거절 여하에 따라 성관계의 처벌이 가능했다면 이번 사건의 판결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란 취지여서, 이번 판결의 수용 여부와 별개로 여성계의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재판부는 “피고인(안 전 지사)의 성관계 요구에 대해 김지은씨가 명시적으로 동의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고, 거부나 저항 정도에 이르지 않았지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거절하는 태도를 보인 바 있었다”며 “피해자의 진정한 내심에 반하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우리 성폭력 범죄 처벌체계 상 이런 사정만으로 피고인 행위가 성폭력 범죄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예스 민스 예스 룰(Yes means yes rule·성관계는 상대방의 적극적 동의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성관계 시도는 강간)’,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거부했는데도 성관계 시도하면 강간)’를 언급하며 “상대방의 성관계 동의 의사 없이 성관계로 나아갈 경우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정책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즉 현행 성폭력범죄 처벌체계 하에서는 거절하거나, 동의가 없었던 성관계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현재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성폭력의 성립 조건을 ‘저항’이 아닌 ‘동의’에 두는 경향이 늘고 있다. 독일에서는 2016년 쾰른 광장에서 일어난 집단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들이 저항을 해야만 성범죄가 증명되는 것에 반대하는 NeinHeisstNein(No means No)’ 캠페인이 추진되며 법이 개정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여기서 더 나아가 동의가 있어야만 성관계에 응한 것으로 보는 ‘Yes means Yes’를 기준으로 삼는 ‘명시적 동의법(Affirmative Agreement)’이 2015년 통과됐다.
이미 우리 여성계도 강간죄 구성 요건을 ‘저항’에서 ‘동의’로 바꾸기 위한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위해 추진 중이어서 이번 사건이 성폭력 법체계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회에도 피해자의 명시적 동의 없이 이뤄진 간음도 강간죄로 처벌하는 등 성범죄 성립 요건을 완화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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