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난민 체크카드 ‘모니’
망명 난민들 상당수가 여권 없어
대부분 나라서 신원 보증 못 받아
핀란드 이민청, 난민들 인터뷰 후
블록체인으로 디지털 신원 관리
지원금 수급 문제점 해결되고
난민은 체크카드 이용 가능해져
낯선 땅에서 취직 문제도 해결
“핀란드는 달랐죠”… 난민 지원 사업에 사용된 블록체인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지난달 만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모하메드 니마(34)씨는 2015년 국경을 넘었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였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다. 니마씨는 “2001년 시작된 정부군과 탈레반의 내전, 거기에 이슬람국가(IS)의 테러까지 더 이상 생지옥 같은 곳에 머무를 수 없어 지금은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촌과 함께 탈출을 결심했다”고 소개했다.
니마씨는 1년 동안 이란, 터키, 그리스, 마케도니아, 슬로바키아, 독일, 스웨덴 등 10여개 나라를 거친 뒤 핀란드를 마지막 정착지로 택했다. 아직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핀란드를 선택한 이유는 블록체인 기반의 스타트업 모니(MONI)가 제공하는 체크카드 덕분이다. 핀란드 이민청이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난민 신청자에게 디지털 신원을 부여해주면 모니가 이를 바탕으로 가상계좌와 체크카드를 발급할 수 있게 되면서다.
“난민 신청자들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신원을 보증 받을 수가 없어요. 신분을 증명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죠. 망명할 때 여권을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설사 가져왔다고 해도 유효기간이 지나버리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핀란드는 달랐어요. 여권이 없어도 제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 있었죠.”
핀란드의 새로운 실험 ‘디지털 신원’
2014년 3,000여명 수준이던 핀란드 난민 유입 규모가 2015년 10배가 넘는 3만5,000여명 수준으로 급증하자 핀란드 이민청은 고심에 빠졌다. 당시 실무를 총괄했던 요우코 살로넨 전 이민청 부청장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이 너무 길고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에 난민들이 사회에 적응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그래서 난민이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작은 실험을 2015년 시작했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핀란드가 생면부지의 난민에게 신원을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은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신원 기술 덕분이었다. 살로넨 전 부청장은 “오사마 빈라덴이나 에드워드 스노든 같은 큰 정치적 인물이 아니더라도, 일반 난민 신청자들도 신원을 보호받으면서 정부의 공공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다”며 “블록체인은 절대로 손상되지 않으면서 어디서나 쉽게 접근가능한 디지털 형태의 신분증을 만들고 안전하게 저장하는 대안이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핀란드 이민청은 간단한 인터뷰 등을 통해 난민의 신원을 파악한 뒤 해당 정보를 블록체인 방식으로 저장한 후 여기에 디지털 신원을 매치시키는 방식으로 난민의 신원을 관리하고 있다. 살로넨 전 부청장은 “전세계에서 디지털 신원을 정부 차원에서 제공한 것은 핀란드가 최초”라고 자신했다.
작은 실험이 가져온 큰 변화...지원금 수급ㆍ취직
핀란드 이민청의 작은 실험은 난민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지고 왔다. 우선 난민 지원금 수급 과정의 문제점들이 해소됐다. 모니의 공동창립자인 일카 몬티씨는 “이민청에서 기존에 현금으로 지원하던 지원금을 모니 계좌에 지급함으로써 난민들은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돈을 찾을 수 있고 체크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이민청은 난민에게 지급되는 59~312유로의 지원금이 언제 누구에게 지급됐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변화는 다른 곳에 있다. 난민문제 전문가인 레나 나레 헬싱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핀란드에서는 현금으로 임금을 지급할 수 없고 등록된 계좌를 통해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난민 신청자들은 취직할 수 없었다”면서 “이제는 모니 계좌 덕분에 취직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설명했다. 인권 문제로 정부를 비판한 사진작업이 발각돼 조국을 떠나야 했던 이라크 출신 난민 신청자 페이살 후세인(27)씨도 이 같은 디지털 신원 제도 덕분에 낯선 땅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적 삶을 누리고 있다. 그는 현재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핀란드 아이들에게 사진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후세인씨는 “비록 이라크 인권 문제와 관련 없는 자연 사진을 찍고 있지만 내 삶을 다시 찾은 것 같아 행복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난민 신청자 지위에 있는 니마씨의 요청으로 개인정보 일부가 수정됐음을 알립니다)
헬싱키=글ㆍ사진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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